1186년(명종 16) 안동(安東) 수령으로 재직할 때 백성들을 탄압하고 착취하여 그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민란을 일으켰다(안동민란). 이 때문에 장물죄(臟物罪)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이후 최충헌(崔忠獻)이 무신집권자 이의민(李義旼)을 제거하고 집권하자 최충헌의 오랜 친구였다는 이유로 장군 벼슬을 받았다. 1204년(희종 즉위년) 급사동정(給事同正) 지구수(池龜壽)의 집에서 무리 30여 명과 함께 회합하여 최충헌을 암살할 것을 모의하였다. 그러나 최충헌 암살모의가 사전에 발각되어 바다 섬으로 유배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