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峰). 무신집권자 최충헌(崔忠獻)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최충헌의 둘째부인 임씨(任氏)이다. 장인은 희종(熙宗: 11811237, 재위 12041211)이며, 부인은 덕창궁주(德昌宮主)이다. 뒤에 최보로 개명하였다.
최충헌의 권세에 힘입어 희종의 딸 덕창궁주에게 장가들어 종실의 반열에 올랐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최성(崔珹)이 친영(親迎: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의례)하는 날에는 종친(宗親)·재추(宰樞)·백관(百官)들이 공복(公服)을 갖추어 입고 최성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처음에 영가백(永嘉伯)에 책봉되었다가 후에 영가후(永嘉侯)로 승진, 책봉되었다. 최성의 아들 최해(崔該)도 의춘후(宜春侯)로 책봉되었다. 왕실종친의 지위를 누리다가 1258년(고종 45) 2월 세상을 떠났다.
1258년 3월 무오정변(戊午政變)으로 최씨무인정권이 붕괴되자 중서성(中書省)에서 최성의 장례를 두고 최성이 최충헌의 권세에 힘입어 억지로 공주(덕창궁주)에게 장가들었기 때문에 종친과 같이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이에 고종은 중서성의 건의를 받아들여 최성의 종친 자격을 박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