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푸트(W. R. Foote, 富斗一) 등이 원산에서 세운 초등 수준의 여자소학교에서 출발하였다.
1909년 「사립학교령」에 따라 인가받았으나, 1912년 10월 20일 수업연한 4년의 사립진성여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가받았다. 당시 학교 재정 규모는 매년 7천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되었는데, 이중에서 캐나다 장로교에서 매년 3천 500원 가량을 지원하였다. 매년 25여명 내외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2년 명석동 산기슭에 3층 신교사를 짓고 이전하였다. 1924년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고, 보통학교로 승격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31년 3월 30일 진성여자보통학교(進誠女子普通學校)로 되었다.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함경남도 성진과 원산 등을 거점으로 교육 및 의료 활동을 통한 선교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진성여학교 교사 차경신(車敬信), 이혜경(李惠卿) 등이 앞장서고, 학생 정춘수(鄭春洙), 곽명리(郭明里), 이가순(李可順), 차광은(車光恩)등이 독립선언서 2천매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또한 원산지역의 학생들과 연합하여 북과 나팔을 불며 시장과 거리에서 연설 하는 등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후에도 진성여학교의 교사 학생 및 졸업생들은 강연회 개최 등 여성운동, 지역운동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924년 조선인 교사의 부당한 파면으로 분규가 일어났고, 1930년에는 조선인을 모독하고 수업에 성의가 없으며, 일본사 교과목에 조선사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사를 제외하는 일본인 교원의 축출, 이과 실험기기 및 운동기구 등의 구비, 조선사 수업 등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벌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