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 군기(軍器)를 관장하던 임시 관부.
내용
1275년(충렬왕 1)에 군기조성도감을 둔 것은 원의 내정간섭으로 인한 일본원정과 연관된 것이라 여겨진다. 1275년(충렬왕 1) 7월 경상 · 전라 · 충청도와 동계(東界)의 군기를 점검하고, 1277년(충렬왕 3)에 각도군기별감(各道軍器別監)을 파견하여 화살을 만들어 경산부(京山府)석주(碩州)에 저장하였다. 1280년(충렬왕 6) 10월에 일본을 정벌하고자 경병(京兵)을 점검하였고, 경상 · 전라 · 충청도 및 동계에 사신을 파견하여 병사를 점검한 바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삼봉집(三峰集』
- 『고려사 백관지 역주』(박용운, 신서원, 2009)
- 『역주 고려사 백관지』(최정환, 경인문화사, 2006)
- 「고려시대 도감의 구조와 기능」(이정훈,『한국사의 구조와 전개-하현강교수정년기념논총-』,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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