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조성도감(軍器造成都監)의 정원 및 품계에 대해서 자세히 전하는 바가 없다. 그 전신으로 보이는 융기도감(戎器都監)은 1223년(고종 10)에 설치되었으나 같은 해 정월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275년(충렬왕 1)에 군기조성도감을 설치하였다. 그 기능은 융기(戎器)·군기조성(軍器造成)이 뜻하는 바와 같이 군기를 제작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보던 임시 관부였다.
1275년(충렬왕 1)에 군기조성도감을 둔 것은 원의 내정간섭으로 인한 일본원정과 연관된 것이라 여겨진다. 1275년(충렬왕 1) 7월 경상·전라·충청도와 동계(東界)의 군기를 점검하고, 1277년(충렬왕 3)에 각도군기별감(各道軍器別監)을 파견하여 화살을 만들어 경산부(京山府)석주(碩州)에 저장하였다. 1280년(충렬왕 6) 10월에 일본을 정벌하고자 경병(京兵)을 점검하였고, 경상·전라·충청도 및 동계에 사신을 파견하여 병사를 점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