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도감은 글자 그대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군기(軍器)를 제작하고 보관하던 임시 관부이다.『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는 고려시대에 군기감(軍器監), 선공감(繕工監), 조성도감(造成都監: 軍器造成都監) 이외에도 방어도감을 설치했던 것을 적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군기감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도감을 두었으며, 한편으로 군기조성도감도 두었다.
방어도감의 설치와 폐지, 정원과 품계에 대해서 자세히 전하는 바는 없다. 다만 왜구의 침입이 창궐하였던 우왕 때부터 방어도감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1375년(우왕 1) 2월에 왕이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지시하여 선군(選軍)하고 모군(募軍)하여 군사의 수를 확충하는 일을 입법하도록 하고, 방어도감은 매 달 쓰는 지출을 마땅히 헤아려 가급(加給)하도록 독려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방어도감은 최소한 1375년(우왕 1) 이전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해 7월에 도평의사사에서, 왜적이 여러 곳을 침공하여 단지 방어도감의 군기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각 기관으로 하여금 그 기관에 있는 돈과 물자를 이용하여 기일 내에 병기를 제조하여 완급(緩急)에 대비하게 할 것을 주청하였다. 이와 같이 방어도감에서는 군기를 제작하고 보관하여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1381년(우왕 9) 7월에 도당이 화통도감(火桶都監)의 화약과 방어도감의 군기를 검열하고 왜구가 바야흐로 치열하게 침입하므로 외방에 있는 전직의 봉익(奉翊)과 통헌(通憲)도 모두 왜구 정벌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 또한 방어도감이 군기를 제작하여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게 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