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목포 일본영사관 ( )

구 목포 일본 영사관 전경
구 목포 일본 영사관 전경
건축
유적
국가유산
대학제국기에 건립된 조적조 건물로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건물.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구 목포 일본영사관(舊 木浦 日本領事館)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근대교육문화/학교시설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81년 09월 25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2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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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대학제국기에 건립된 조적조 건물로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건물.
역사적 변천

구 목포 일본영사관은 일본이 건립한 일본영사관으로 현재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7년 10월 16일 대한제국과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의 각국 사이에 체결된 ‘목포각국공동조계장정’에 따라 같은 해 10월 26일 개항장인 목포에 일본영사관이 설치되었다. 이 건물은 목포에 외국인 거류지가 조성되면서 목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영사관으로 지은 2층의 붉은 벽돌 건물이다. 간략한 고전주의 건축양식이 특징이다.

일본은 조선시대 수군의 군영이었던 만호청을 빌려 영사관으로 사용하다 영사관을 짓기 위해 무안감리에게 영사관 부지로 1만 6,028㎡를 요청하였으나 9,483㎡을 승인받아 이 영사관을 지었다.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공사비 7만여 원을 들여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5년 11월 22일 ‘통감부 및 이사청 관제’에 관한 법령에 따라 목포의 일본영사관은 목포 이사청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고, 1910년 8월 29일에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고, 10월 1일 지방관제를 개편하면서 무안부는 목포부로 개칭되었으며, 이사청사는 목포부청사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7년부터는 목포시청, 1974년부터 시립도서관, 1990년 1월부터 2009년까지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2014년부터는 목포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체험현장인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용

구 일본영사관은 목포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경사지에 영사관을 짓기 위해 일본식 축댓돌〔[犬齒石〕 쌓기로 대지를 조성하였다. 건물은 중앙의 목조현관과 삼각형 박공인 페디먼트(pediment)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구성을 가진 간략한 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흰색과 붉은 벽돌을 교대로 사용한 창문의 아치는 같은 시기 서양 건물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내부는 나무 바닥과 천장의 장식 그리고 벽난로 등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일왕의 사진이나 말을 보관하던 봉안전(奉安殿) 터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건설한 방공호 등이 남아 있다.

당시 서양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고 일제 침략의 현장으로 역사적 교훈을 주는 사적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목포시사』(목포시, 1987)
「목포 구시가지 도시조직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조준범,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21-10, 대한건축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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