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외 30절판형. 122면. 1980년 4월 20일에 심상사에서 발행하였다.
책 끝에 오세영의 발문 〈삶의 해체 혹은 삶의 확인〉이 있고, 그 뒤에 작자의 후기가 있다. Ⅰ부 ‘말’에 「말」외 14편, Ⅱ부 ‘두보에게’에 「두보에게」외 18편, Ⅲ부 ‘연가집’에 「연가」1-10과 「귀향」외 3편 등 총 4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빈집을 지키며』는 작자의 첫 시집이다. ‘시는 내게 있어 언어를 통한 생의 해방이며 자기 구원의 모험이며 한 시대의 삶을 직시하는 눈 뜬 자의 독백이어야 했다’고 시집의 후기에서 작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시집에는 삶에 대한 작자의 진정성이 잘 드러나 있다. 작자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으로부터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시는 현실에서 멀어져 있는 자아의 내면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쓰린 늙음이 먼저 와서/빈 집의 저녁 연기 속에 앉아 있다/계단을 올라오는 낯선 사람이/아내가 잠그고 간 빗장을 푼다/홀로 마시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빈 집을 지키며」에서)고 고백하는 이 시를 통해 현실과 멀어져 해체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기소멸 또는 자기해체를 경험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참다운 자아를 찾기 위해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성찰의 결과 작자는 현실을 외면했던 자기자신에 대하여 심한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말」,「못을 박으며」,「각성」등이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로써 자아를 확립한 시인은 삶의 해체 또는 소멸이라는 개인적 생존으로부터 공동체적인 삶으로 회귀하게 되는데, 「친화」가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조창환의 첫 시집인 『빈 집을 지키며』는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진정성이 잘 드러난 작품집이다. 작자는 모순투성이이며 절망에 찬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소멸 또는 자기해체의 삶을 지향하지만, 그것은 결국 진정한 자아성찰과 귀결된다. 이렇게 자아를 성찰한 다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게 되고, 개인적인 삶에서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빈 집을 지키며』는 현실에 대응하는 작자의 치열한 정신이 높은 예술성을 획득한 작품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