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연 43행의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보내는 노동 일가 삼남매의 구체적인 삶과 사회적 의지가 ‘누이 동생’이 ‘오빠’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 속에 형상화되어 있다.
작품 속의 ‘누이 동생’은 질화로와 화젓가락이라는 시적 매개를 통해 당대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그에 대한 극복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직접적인 노동쟁의를 묘사하는 대신 노동운동에 뛰어든 청년과 그 가족이 겪은 생활 현실의 단면을 누이동생이라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편지체 형식으로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편지의 초반부에서는 영남(永男)이가 힘든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사온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진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현재 삼남매가 처해 있는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중반부에서는 예전에 오빠가 보여 준 행동과 말들을 통해 현재 자신과 영남이가 처해 있는 상황의 의미를 되새기고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이 꿋꿋하게 사회의 변혁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에 대한 공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에는 그러한 사회적 변혁의 운동 속에서 자신과 영남이의 처지와 동일한 상황에 있는 다른 이들에 대한 시선을 확인하고 사회적 운동에 대한 동참 의식을 나타낸다.
이 시에서 표면에 드러나 있는 사건은 ‘화로의 깨어짐’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시의 담론을 이끌어가는 것은 사건의 전개라기보다는 각 인물들의 ‘발화들’이다. 이 시는 일차적으로 기존 프로시의 일방적인 담론 구조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에 서간체라는 장치를 도입하여 새로운 창작방법을 실천한 결과 얻어진 성과이다. 새로운 담론 구조 속에서 타자는 더 이상 시인과 텍스트의 외부에 소외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독자는 시 속의 돈호법에 의해 계속해서 텍스트 안으로 불려가며 자신의 내적 경험과 내면을 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시인이 구현한 담론의 장치에 의해 자신의 음성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구조는 투쟁을 호소하고 계속 싸워나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을 은근하면서도 적절한 어조로 직접 이야기하듯 담아내어 강한 선동성을 지니게 한다. 이를 통해 이 시가 쓰인 1929년 무렵에 이미 임화의 세계관이 확고하게 노동자 계급의 세계관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작가인 임화 자신은 이 작품을 발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작품의 내용이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속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한 채, 관념적으로만 다가선 결과임을 스스로 비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