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생.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활동했다.
박정만은 1946년 8월 26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군 산외면 상두리에서 출생했다. 1965년 7월, 전주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경희대학교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서 시 「돌」이 장원을 받았다. 1967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68년 1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신춘시〉 동인에 가입했다.
1971년 2월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학원출판사에 입사했다. 1972년 4월 문공부 문예 작품 공모에 시 「등불설화」, 동화 「봄을 심는 아이들」이 당선되었다.
1975년 학원출판사 퇴사 후 학창사, 중앙문화사 등을 옮겨 다니다 1977년 11월『월간문학』 편집부장으로 입사했다. 1979년 10월 『월간문학』에서 퇴사했다. 1979년 고려원에서 첫 시집 『잠자는 돌』을 간행하고, 1980년 고려원 편집부장으로 입사하였다.
1981년 5월, 소설가 한수산(韓水山)이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 필화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한수산, 정규웅 등과 함께 연행되었고, 온갖 고문을 받았다. 이 고문으로 인하여 그는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극심하게 악화되었다. 결국 그는 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년에 간경화증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1984년 9월 동화집 『크고도 작은 새』(서문당)를 발간했고, 1986년 4월 시집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오상사)를 발간했다.
1987년 8월 19일부터 20여 일 동안 무려 300여 편의 시를 썼다. 그 해 8월, 수필집 『너는 바람으로 나는 갈잎으로』(고려원)를 발간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시집 『무지개가 되기까지는』(문학사상사)을 발간했고, 이어 11월에는 시집 『서러운 땅』(문학사상사)을, 12월에는 시집 『저 쓰라린 세월』(청하)을 간행했다.
1988년 1월 간경화로 병원에 1개월간 입원하였으며, 같은 달 시집 『혼자 있는 봄날』(나남)을 발간했다. 그해 3월 시집 『어느덧 서쪽』(문학세계사)과 『슬픈 일만 나에게』(평민사)를 발간했다. 같은 해 8월 19일부터 28일까지 인사동 서림화랑에서 ‘박정만 시화전’을 열었고, 이 시화전의 작품을 담아 『박정만 시화집』(청맥)을 간행했다.
1988년 10월 2일 타계했다.
1988년 11월 유고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실천문학사)이 간행되었고, 1990년 9월『박정만 시전집』(외길사)이 간행되었다.
1987년에 경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타계 후 1989년에 현대문학상, 1991년에 지용문학상이 주어졌다.
박정만의 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시의 전개 과정에서 전통 서정의 세계를 새롭게 확장시켰으며, 특히 1981년 필화사건으로 인해 고문을 겪은 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인식을 서정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주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정갈한 정서를 담기에 좋은 단형 서정시로서 5행시를 실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