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격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남의 집을 빌려 거주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주택임대차 유형으로, 월세를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월세와 차별화된다.
우리나라 전세 제도의 기원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주택임대차관계가 형성되었다. 조선말기 전세가격은 기와집과 초가집에 따라 달랐으며, 보통 집값의 반 정도로 전세값을 받았으며 비싼 곳은 집값의 7∼8할에 육박했다. 전세기간은 통상 1년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주택난이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세 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고려시대의 전당제도(典當制度)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가사전당(家舍典當)으로 발전하면서 현대에 이르렀다는 시각도 있으나, 가사전당은 단순한 사금융의 한 형태로서 주택을 답보로 하는 금전대차제도에 불과하여 전세 제도와는 엄격히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택임대차 제도이다. 전세 제도가 도입된 것은 주택금융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집주인은 부족한 주택구입자금을 전세자금을 이용하여 무이자로 융통하고, 세입자는 매달 이자를 부담하는 것보다 주택의 절반가격 정도에서 주택을 임차하는 것이 득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관점에서는 주택을 매매가격의 절반 이하로 임대하는 것은 이윤추구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세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간 주택시장에서 가격상승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소유자는 주택매수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전세자금을 통하여 무이자로 빌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가격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주택소유자는 전세금에 대한 이자수익에 의존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현재와 같이 낮은 자금으로 주택을 임대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된다. 통상적으로 매매시장이 안정되면 전세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전세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주택이 양적으로 부족했으며, 특히 도시지역의 주택부족이 심각했고,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반면 전세를 대체할 공공주택 재고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75년 전체가구의 17.3%에 불과하던 전세가구 비중이 1995년에는 29.7%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후 월세비중이 들어나면서 전세가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 403만 9000가구에 이르던 전세가구는 2010년 376만 6000가구로 감소하였다. 비중도 21.7%에 불과한 상황이다.
전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택임대차 유형으로써 무주택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임차주택에 거주하고, 목돈을 만들어 내집마련을 용이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세가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주택부족이 상당부분 해소되고 주택가격이 안정된데다가 주택대출시장의 확대로 사금융으로써의 필요성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인구고령화로 인해 집주인들이 전세보다는 매월 임대수익이 보장되는 월세나 보증부 월세를 선호하고 있어 전세의 감소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