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충북 충주 출생. 1930년『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콩트 「기폭(旗幅)」이 당선되고, 같은 해『신여성』지에 시 「외로운 전망」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궤짝 속의 왕자』 등이 있다.
박재륜은 1910년 11월 1일 충청북도 충주군 가금면 가흥리에서 출생했다. 호는 국초(菊初), 국사(菊史), 서번(西蕃). 1925년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당시 휘문교보에 재직 중이던 가람 이병기 선생으로부터 많은 문학적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콩트 「기폭」이 당선되고, 『신여성』지에 시 「외로운 전망」, 「오월」, 「월광곡」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1년 휘문고보를 졸업하였고, 1932년 전매청에 취직하여 3년간 함경북도 성진항에서 거주하면서 「북관시정(北關詩情)」 등의 작품을 썼다. 1934년에 귀향하여 영농을 하였다.
1951년 고향 충주에 고등공민학교(뒤에 농업기술학교로 개칭)를 설립하였으며, 1954년부터 1958년까지 충주여자중학교, 충주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과 전임강사로 교편을 잡았다.
1956년 남한강문화협회를 결성하였고, 계간지 『남한강』과 주간지 『남한강시보』의 주간을 역임했다. 1958년 문학동호회 〈예문회(蘂文會)〉를 충주에서 설립하여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동인지 〈예문〉을 2집까지 펴냈다.
1959년 첫 시집 『궤짝 속의 왕자』를 해동문화사에서 펴냈다. 같은 해에 중원군 소재 신명중ㆍ고등학교 교장 서리에 취임하였다. 1961년에는 중원교육구(中原敎育區) 교육감에 피선되었다.
1962년 초등학교 교장으로 전보되어 단양, 제천, 중원, 충주 등지의 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1976년 2월에 정년퇴임하였다.
1969년 시집 『메마른 언어』를 한국북클럽에서 간행하였으며, 1972년 〈내륙문학동인회〉를 창립하여 『내륙문학(內陸文學)』을 창간하였고, 같은 해에 시집 『전사통신(田舍通信)』을 현대문학사에서 간행했다.
이후 1978년 시문집 『인생의 곁을 지나면서』를 현대문학사에서, 1981년 시선집 『흰수염 갈대풀』을 청암사에서, 1982년 수상집 『천상(川上)에 서서』를 청암사에서, 1986년 시문집 『고원의 꽃밭』을 청지사, 1987년 시집 『설령(雪嶺) 높은 마루』를 청지사에서 각각 간행하였다.
한편, 1979년 제1회 〈서번시서전(西蕃詩書展)〉을 충주에서, 1980년 제2회 〈서번시서전〉을 청주에서 개최하였으며, 1980년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장에 피선되어 1982년까지 역임하였다.
2001년 5월 14일 타계하였다.
1968년 충청북도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박재륜 시비’가 1993년 충주체육공원 앞에, 1997년 고향 마을인 가금면 영흥리에 각각 세워졌다.
박재륜의 초기시는 회화적 이미지 구사에 주력하여 모더니즘적 특징을 드러냈으며, 특히 “자본주의 도시로부터 소외된 주체가 느끼는 권태를 시각화함으로써 자본주의 도시가 본질적으로 차별적 공간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