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라 상고기(上古期)에 국사를 논의하던 정청(政廳).
개설
내용
명칭상으로 보아 남당은 정무를 집행하는 행정적 성격의 기구이며, 정사당은 그를 논의하는 회의체적 성격을 지닌 기구이자 건물로 보인다. 다만 중고기(中古期)에 이르러 국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화가 추진되자 정사당이 지닌 회의체적 기능은 점차 쇠퇴하여 정무를 논의하는 건물로서의 의미만 남게 되었다. 9세기 초 헌덕왕 때에 이르러 왕의 동생인 각간(角干) 김충공(金忠恭)이 최고 실력자가 되어 정사당에 자리하여 내·외관(內外官)의 인사문제를 처리하였다는 기록은 그를 방증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라 화백회의 연구현황과 중층적 회의구조」(박남수,『신라문화』30, 2007)
- 「6세기 신라 귀족회의와 그 성격」(신형석,『국사관논총』98, 2002)
- 「신라의 군신회의와 재상제도」(이인철,『한국학보』65, 1991)
- 「고대남당고」(이병도,『서울대학교논문집1-인문사회과학-』, 1954:『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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