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군사(假軍師)는 668년(문무왕 8)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군공(軍功)을 포상할 때 그 대상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비열홀(比列忽) 출신의 세활(世活)이란 인물이 보유한 직책이었다. 그밖에 다른 사례는 없다. 명칭상으로 미루어 군사(軍師)에서 파생된 직명임이 분명하다. 군사는 원래 지방민 가운데 촌주(村主)급에 해당하는 유력자에게 주어진 직책이다. 촌주가 주로 행정을 담당하였다면 군사는 병사 관련 업무를 담당한 데서 설정되었다. 촌주급에 해당하면서도 직능에 따라 명칭이 구분되었다. 가군사는 조직상 군사 다음의 지위이다. 다만 평시 지방의 유력자가 보유한 것인지 아니면 고구려와의 전쟁이 확대되면서 많은 병력이 요구된 상황 속에서 신설된 임시직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세활은 가군사로서 군공 포상으로서 속(粟) 5백석과 함께 고간(高干)이란 외위(外位)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