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553년(진흥왕 14) 7월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수복한 한성(漢城)을 비롯한 한강 유역 일대를 전부 차지하였다. 이 지역은 정치·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때 진흥왕은 자신의 힘으로 새로 확보한 영토라는 의미에서 신주(新州)란 이름을 붙여 하나의 행정단위로 설정하고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아찬(阿湌) 김무력(金武力)을 군주(軍主)로 삼았다.
처음 신주의 행정·군사적 중심지는 한성이었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신주의 주치(州治)를 일시 한강 건너 북한산(北漢山)으로 옮겼다. 이로써 북한산주(北漢山州)가 신설되었다. 그러다가 568년(진흥왕 29) 10월에는 다시 주치를 한강 남쪽의 남천으로 옮겼다. 이처럼 신주의 주치가 번번하게 이동하였던 것은 고구려와의 밀고 밀리는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 결과였다.
604년(진평왕 26)에 이르러 신주의 주치는 다시 북한산으로 옮겨졌다. 618년(진평왕 40)에는 주치를 오늘날 서울시 강남 지역인 한산으로 옮기고 그 명칭도 한산주(漢山州)로 고쳤다. 757년(경덕왕 16)에 이르러 한산주는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진흥왕이 세운「북한산순수비(北漢山巡狩碑)」에는 ‘남천군주(南川軍主)’란 직명이 보인다. 신주의 주치가 남천으로 옮긴 시점을 근거로 제공하는 이 비도 대략 568년 무렵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