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이듬해인 661년(문무왕 1) 당군 사령관 소정방(蘇定方)의 고구려 원정을 보좌하였다. 이때 신라는 문무왕의 아우 김인문(金仁問)을 귀국시켜 당의 고구려 원정을 돕도록 요청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문무왕은 김유신(金庾信)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아 대당을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군단을 일시 전시체제에 맞추어 재정비하였다.
그해 8월에는 문무왕이 전체 군단을 통솔하고 왕경을 출발하여 한강 유역 방면으로 진군하였다. 진군하던 도중에 잠시 시이곡정(始飴谷停)에 이르러 주둔하였다. 이때 백제지역에 나가 있던 부대로부터 백제의 유민이 옹산성(甕山城)을 장악하고서 신라군의 진군을 차단하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전갈이 왔다. 문무왕이 그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듣지 않자 병력을 돌려 웅현정(熊峴停)으로 나아갔으며 옹산성 주변에 전 병력을 집결시킨 후 공격하여 항복시켰다.
이러한 점을 통해서 보면 시이곡정은 상설적인 군단 주둔지라기보다는 661년의 행군 중에 일시 병력이 머물렀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시이곡정은 삼국통일기에 한시적으로 유지되었던 군단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 구체적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한강 유역의 이천 방면으로 보기도 하고,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으로 비정하는 등 논의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