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곡정

  • 역사
  • 제도
  • 삼국
삼국통일기에 신라가 시이곡(始飴谷)에 둔 군단.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주보돈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통일기에 신라가 시이곡(始飴谷)에 둔 군단.

내용

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이듬해인 661년(문무왕 1) 당군 사령관 소정방(蘇定方)의 고구려 원정을 보좌하였다. 이때 신라는 문무왕의 아우 김인문(金仁問)을 귀국시켜 당의 고구려 원정을 돕도록 요청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문무왕은 김유신(金庾信)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아 대당을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군단을 일시 전시체제에 맞추어 재정비하였다.

그해 8월에는 문무왕이 전체 군단을 통솔하고 왕경을 출발하여 한강 유역 방면으로 진군하였다. 진군하던 도중에 잠시 시이곡정(始飴谷停)에 이르러 주둔하였다. 이때 백제지역에 나가 있던 부대로부터 백제의 유민이 옹산성(甕山城)을 장악하고서 신라군의 진군을 차단하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전갈이 왔다. 문무왕이 그들을 회유하려 했으나 듣지 않자 병력을 돌려 웅현정(熊峴停)으로 나아갔으며 옹산성 주변에 전 병력을 집결시킨 후 공격하여 항복시켰다.

이러한 점을 통해서 보면 시이곡정은 상설적인 군단 주둔지라기보다는 661년의 행군 중에 일시 병력이 머물렀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시이곡정은 삼국통일기에 한시적으로 유지되었던 군단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 구체적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한강 유역의 이천 방면으로 보기도 하고,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으로 비정하는 등 논의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통일전쟁사』(노태돈,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9)

  • - 「통일기 신라의 백제고지지배-《삼국사기》직관지·제사지·지리지의 백제관계기사 분석을 중심으로-」(노중국,『한국고대사연구』1, 1988)

  • - 「삼국통일전쟁과 백제부흥운동-주류성·백강의 군사지리학적 고찰-」(전영래,『군사』4, 198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