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주(鄕村主)는 833년 청주(菁州: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 연지사(蓮池寺)에서 주조된 동종(銅鐘)에 새겨진 명문 가운데 보인다. 향촌주의 향(鄕)을 경(卿)으로 읽기도 하는 등 판독상 불분명한 점이 있다.「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境淸禪院慈寂禪師陵雲塔碑)」의 음기에도 사향촌주(寺鄕村主, 때로는 卿으로 판독되기도 함)가 보인다. 경은 당시 일반적으로 차석(次席)의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따라서 경촌주(卿村主)라고 한다면 촌주에 다음가는 직책이 된다. 촌주는 지방의 유력자에게 주어진 직책으로서 5세기 후반 처음 두어진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존속한 직명이다. 통일기에는 진촌주(眞村主)와 차촌주(次村主)로 등급이 나뉘어져 유력한 지방민의 신분 등급을 나타내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경촌주라면 차촌주 급에 해당한다.
신라시대 향은 특수한 기능을 집단적으로 맡은 지방행정구역의 최말단 단위이다. 그렇다면 향촌주는 향에서 최고 우두머리인 촌주가 되는 셈이다. 전반적으로 후자 쪽이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다만, 사원에 설치한 성전(成典)의 관직 가운데 경의 직위를 지닌 촌주로 보기도 하고, 사원의 수리와 경영에 관여하는 역역을 관장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