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1월 1일에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마탄사스지방회(Matanzas地方會)가 마탄사스 지역에 자리한 핀카 엘 볼로(Finca El Bolo)의 한인 마을에 설립하였다. 마탄사스지방회와 학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1944년 말까지 유지되었다.
한인 2세 아동들에게 한글과 한국의 역사문화를 가르쳐 민족혼을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한편, 조국의 독립과 함께 독립 후 국가를 건설해 나갈 일꾼을 양성하려고 하였다.
1922년 설립 당시에 교장은 김덕순이 맡았고, 교사는 서병학, 감사는 이인환이었다. 하지만 다음해에 마탄사스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의 2/3가 카르데나스(Cardenas)로 옮겨 가면서 마탄사스 지역에는 지방회 회원 40여 명을 포함하여 남녀 89명만이 살았다. 학교는 극심한 재정난을 겪었지만, 1924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北美地方總會)에서 보낸 구제금 310원과 동아일보사에서 보낸 국내의 위문금 134원을 받아 운영하기도 하였다.
학급은 갑·을·반 3반으로 나누어 운영하였다. 다만 주간반 외에 야간반도 두었는데, 1926년에는 연경운이 주간 교사를 맡고, 야간 교사는 임천택(林千澤, 1903~1985)이 담당하였다. 1935년부터는 주경야독하는 한인 청소년들을 위해서 매주 월요일∙목요일∙금요일에 야학반을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이 여전하고 교사마저 부족하여 휴교하는 경우가 잦았다. 1944년 9월에는 교사 김세원이 카르데나스로 이주하면서 휴교하였고, 특히 핀카 엘 볼로의 땅이 팔려 남아 있는 한인들이 각 도시로 흩어지자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였다.
민성국어학교의 교장은 김덕순, 양춘명, 장영기, 박창운, 임천택, 이세창 등이 맡았고, 서병학, 연경운, 임천택, 방경일, 박두현, 이세창, 박창운, 고경일, 양춘명, 이세창 등은 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밖에 이인환은 감사, 김덕수는 총무, 고창덕·태덕일은 간사, 임병일은 서기 등을 맡아 학교 운영에 참여하였다.
이 학교는한인 2세 아동들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계승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사회·정치활동 기관인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종교활동 기관인 감리교 한인교회와 함께 쿠바 한인들의 민족 공동체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