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3월에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카르데나스지방회(Cardenas地方會)가 설립하였다. 1928년 이후에는 재정난으로 운영되지 못하였다가 1930년 3월에 다시 개교되었지만, 1933년 이후에 폐교되었다.
한인 2세 아동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민족혼을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한편, 조국의 독립과 함께 독립 후 국가를 건설해 나갈 일꾼을 양성하려고 하였다.
1922년에 마탄사스(Matanzas) 지역에서 카르데나스로 대거 이주한 한인들이 1923년 3월 8일에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를 세우면서 동시에 설립하였다. 운영 경비는 학부모의 출연금(出捐金)을 비롯하여 한인들의 찬성금(贊成金)과 지방회의 교육 기금 등으로 충당하였다. 그러나 1928년 이후에는 재정난으로 인해 운영을 중단하였다.
1930년 1월 26일에 카르데나스지방회 회장으로 취임한 임천택(林千澤, 1903∼1985)이 부회장 이명상, 간사 이윤상과 함께 개학설비위원으로 다시 학교를 열 것을 가결한 뒤 3월 9일에 개교하였다. 당시 카르데나스지방회의 임원을 맡고 있던 임천택, 이명상, 김덕순, 장윤익, 허영보 등은 운영을 위한 찬성금으로 매달 20전씩, 회원 김동수는 매달 30전을 내기로 약정하는 등 학교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31년 당시에는 학생수가 15명에 이르렀다.
경제 공황이 계속되면서 1932년부터 다시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다. 홍익삼, 허영보 등이 중심이 되어 학부모의 출연금 외에 한인 동포에게 수입금 가운데 20전∼1원까지 기부하도록 권고하였고, 카르데나스지방회도 매달 예산 가운데 2/3를 운영 경비로 사용하도록 결의하였다. 하지만 이후 학교 운영과 관련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1933년 이후에는 더 이상 운영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교는 한인 2세 아동들에게 민족 교육을 하여 카르데나스 한인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주간반과 야간반으로 나누어 운영하였는데, 학생 수는 1925년 당시에 28명이었다. 특히 7세∼12세의 아동을 갑반·을반·병반으로 배치한 뒤 수준에 따라 상·중·하로 다시 나누어 가르쳤다. 교재로는 국내에서 입수한 『국어독본(國語讀本)』, 『고등산술』, 『사민필지(士民必知)』 등을 이용하였다. 강흥식이 초대 교장을 지낸 이래, 임천택과 김덕순도 교장을 맡았고, 교사와 간사는 이세창과 이윤상이 담당하였다.
이 학교는 한글 교육을 통해서 애국심과 민족 의식을 함양하여 한인 2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갖추고 유지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 교육 기관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