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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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인물
해방 이후 광주호남 국악원, 전남미술예술학원, 남도국악학원 등에서 소리선생으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1년 1월 17일
사망 연도
1990년 2월 4일
출생지
전라남도 승주군 송광면 월산리 977번지 추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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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광주호남 국악원, 전남미술예술학원, 남도국악학원 등에서 소리선생으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개설

15세부터 판소리에 입문하여 공창식, 박동실 등에게 배웠으며, 광복 직후부터 40년간 광주 일대에서 판소리 선생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전승한 「고사소리」는 중요한 학술자료이다.

활동사항

공대일(孔大一)은 1911년 전남 승주군 송광면 월산리 추동마을에서 출생하여 광주에서 활동하던 근현대 판소리 명창이다. 세습무 집안 출신으로 공창식(孔昌植) · 공기남(孔基南, 1917-1971)과도 한 집안이며, 창무극으로 활동하던 공옥진(孔玉振, 1933-2012)의 부친이기도 하다. 그는 15세부터 공창식에게 「흥보가」「춘향가」를, 장판개에게 「흥보가」를 부분적으로 배웠다고 한다. 나중에는 박동실에게 「심청가」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대일은 집안소리로 「고사소리」를 배워서 고사꾼으로 널리 활약했다. 공대일은 광복 직후에는 광주성악연구회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명창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1945년 이후 공대일은 주로 소리선생으로 활동하면서 광주권번(1945), 전주권번(1949), 정읍권번(1952)에서 소리를 가르쳤고, 1955년부터는 광주 호남국악원 소리선생으로 취임하였다. 여성국극이 유행하던 1950∼60년대에 공대일은 소리선생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후에도 전남민속예술학원(1960), 남도국악학원(1976)에서 계속 소리를 가르쳤으며, 1984년까지 거의 40평생을 소리선생으로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소리사에서 공대일의 작품이나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공연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가르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공대일은 박동실제 「심청가」를 전바탕에 가깝게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녹음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다. 「흥보가」 등 다른 판소리는 여러 사람에게 배운 소리를 자신이 재구성하여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판소리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도막소리를 가르치는 데는 탁월했지만, 전바탕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많은 제자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리를 온전하게 전승한 제자는 없다. 그는 스승과 친척이 월북을 하였으므로 1950∼60년대에는 스승의 소리를 내세우기 어려웠고, 소리 또한 여러 제가 섞여 있어서 온전한 제자를 둘 수 없었지만, 광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낸 점은 높이 평가된다. 197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공대일은 상청이 짧지만 구성진 수리성을 지녔으며, 기교적인 소리를 하는 편이다. 그의 녹음은 도막소리로 흥보가 중에서 ‘제비노정기-돈타령’이 있는데, 이 ‘제비노정기’는 장판개 제와 동일하게 “안남산 지내고 반남산을 지내……”로 시작된다. 그의 「고사소리」는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1990년에 작고했다.

참고문헌

『명인명창』(정범태, 깊은샘, 2002)
「1940년대 판소리와 창극 연구」(김민수, 한국학중앙연구원박사학위논문, 2013)
「명창 공대일의 삶과 예술세계」(이명진, 『실천민속학연구』제15집, 2010)
「공대일 고사소리」( 『이보형 채록 고사소리』, 한국고음반연구회, 1CD, 1997)
「공대일 흥보가」(『KBS소장 작고 명인집』, KBS-FM, 1CD, 1999)
집필자
배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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