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숙(吳貞淑)은 1935년 6월 21일 진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하였다. 부친 오삼룡(吳三龍)은 전라좌도농악의 상쇠였으며, 판소리도 잘 불렀다. 오정숙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판소리에 입문하였으며, 익산의 이기권(李基權)에게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1949년 14살에는 부친과 함께 여성국극단 활동을 시작하였고, 1950년에는 ‘김연수창극단(우리국악단)’으로 옮겼으며, 1954년에는 ‘삼성여성국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58년 김소희로부터 「심청가」를 배우기도 했지만 1962년부터 다시 김연수(金演洙, 호 동초(東超), 1907∼1974)로부터 본격적으로 동초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오정숙은 동초제의 전승과 보급에 일생을 바쳤다. 1972년부터 시작하여 매년 「춘향가」(1972), 「흥보가」(1973), 「수궁가」(1974), 「심청가」(1975), 「적벽가」(1976) 등 동초제 판소리 5바탕을 완창했다. 5바탕 완창은 박동진 이후 여류명창으로는 처음 이루어낸 성과였다. 완창이 진행되던 1974년 스승 김연수 명창이 작고하는 바람에 생전에 미처 배우지 못한 「적벽가」는 1967년 동아방송에서 녹음한 김연수의 테이프을 듣고서 복원했다. 1977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창극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특히 월매역에 뛰어났다. 오정숙은 1982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보유자후보를 거쳐 1991년에는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5년 제1회 전주대사습 판소리경연대회 장원을 하였고, 1984년 KBS국악대상, 2007년 제14회 방일영국악상 수상하였다. 1993년에는 ‘동초제 판소리 보존회’를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일주 · 조소녀 · 민소완 등 많은 제자를 길렀다. 2001년 판소리 5바탕을 음반으로 출반하였다. 2008년 7월 7일 73세를 일기로 익산에서 작고하였다. 오정숙은 수많은 완창 기록을 지니고 있으며, 창극 등 활발한 공연활동을 하였다. 또한 많은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광복 후에 새로 짜인 동초제가 현대 판소리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성음은 맑으면서도 단단하며, 특히 분명한 발음으로 사설 전달 능력이 빼어났고, 스승의 소리를 한 자 한 구도 틀림없이 악보로 그려낸 듯이 재현하였다. ‘판소리는 연극’이라는 김연수의 소리이념에 충실하여 연기력과 발림에도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진소리 경향은 판소리의 즉흥성과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