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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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인물
경기도의 대표적인 세습무가 출신의 남자 무속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9년(고종 36)
사망 연도
1987년
출생지
경기도 화성군 오산면 부산리 또는 안말 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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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의 대표적인 세습무가 출신의 남자 무속인.
개설

1899년 경기도 화성군 오산면에서 출생한 무속인. 약 11대에 걸쳐 무업을 대물림한 전통적인 세습무가 출신의 화랭이.

생애

1899년 경기도 화성군 오산면에서 출생한 경기도의 대표적인 화랭이였다. 약 11대에 걸쳐 무업을 대물림한 전통적인 세습무가 출신으로서, 부친인 이종하도 화성 재인청 출신이었다. 이용우가 참여하는 도당굿에서는 화랭이가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군웅노정기나 뒷전은 그가 도맡아서 연행했다고 한다. 또한 이용우는 판소리나 대금, 꽹가리, 춤 등에도 능숙한 다재다능한 명인이었다. 이용우는 계모였던 박금초로부터 8세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부친이 이끄는 창극단을 따라 전국을 유랑했는데, 이 때 함께 다닌 명창으로 송만갑과 이동백 등이 있었다고 한다. 15세부터 20세까지는 광무대를 비롯해서 단성사 등을 따라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소리를 했다고 한다. 22세 되던 무렵에는 대금 공부를 통해서 잽이로서 도당굿을 다녔다고 한다. 이후 숙부인 이종만에게서 6년 동안 도당굿에 필요한 춤, 노래, 무악 장단, 마달(문서), 굿의 진행 제차 등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화랭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30세 무렵부터는 다시 창극단을 따라 나서면서 틈틈이 도당굿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도당굿에만 전념하여 당대 최고의 화랭이로 이름을 날렸다.

참고문헌

『경기굿』 (경기도국악당, 2008)
『한국 화랭이 무속의 역사와 원리』 (김헌선, 지식산업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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