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평양 기생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에 평양에 있었던 기생 교육 시설이다. 평양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독립적인 기생 기예 교육의 전통이 있어서, 가무학교ㆍ기생서재(書齋)ㆍ기생학교 등에서 기생에게 음악과 노래를 교육시키고 있었다.
조선의 관기(官妓)들은 1905년 여악(女樂) 폐지, 1908년 태의원 폐지, 1909년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갈 곳이 없어지자 1910년대에 각종 기생 조합에 흡수되거나, 독자적인 기생조합을 만들었다. 따라서 기생의 가무 교육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권번에서 선생을 모셔 직접 가르치거나, 가무학교ㆍ기생서재(書齋)ㆍ기생학교 등에서 학습한 후 정식으로 기생이 되었다.
이후 1917년 무렵 평양 소재 세 곳의 기생 교육 시설을 통합하여 평양음악강습소(平壤音樂講習所)가 설립되었고, 평양 기성권번 학예부와 기성기생양성소로 이어졌다.
가무학교 졸업생인 기생 은주(銀珠)가 ‘십일세에 가무학교에 들어가 춤은 승무를 배우고 소리는 시조ㆍ가사ㆍ노래ㆍ수심가ㆍ놀량사거리ㆍ육자백이ㆍ흥타령ㆍ양산도ㆍ긴난봉가ㆍ경복궁타령ㆍ방아타령을 다 잘하는데.’라고 한 점을 보면 가무학교에서는 노래와 춤이 기본으로 교육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사한 기생 교육 시설인 기생서재와 기생학교에서도 춤은 남무ㆍ입무ㆍ춘양무ㆍ승무ㆍ검무ㆍ항장무ㆍ포구락, 노래는 수심가ㆍ놀량사거리ㆍ시조ㆍ가사ㆍ노래ㆍ잡가ㆍ만수타령ㆍ흥타령ㆍ양산도ㆍ긴난봉가ㆍ경복궁타령ㆍ방아타령, 악기는 가야금ㆍ거문고ㆍ양금ㆍ장구ㆍ사미센(三味線) 등을 기량에 맞게 가르쳤다.
음악과 춤을 매개로 활동함으로서 단절된 위기에 있었던 여악(女樂)과 전통예술을 비롯한 민속음악을 교육하고 전승한 공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