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 출신. 본명은 광홍(光弘). 광호(光湖)는 예명(藝名)이다. 세습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판소리 · 가야금 · 거문고 · 장고 등을 배워 평생 연주활동을 한 연주가이다. 1938년 담양군 월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7살 무렵부터 소리공부를 시작하였다. 13살에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하여 담양에서 김봉태에게 단가(短歌)와 춘향가 중 「쑥대머리」 · 「동풍가(東風歌)」를, 화순(和順)에 사는 매형인 가야금연주자 박경석(朴景錫)에게 2∼3년간 가야금을 배웠다. 이때 배운 가야금은 한수동(韓壽同)에서 한숙구(韓淑九)에게 전해졌다가 박경석에게 전승된 바디로 지금은 서공철류(徐公哲流)로 전해지고 있는 가락이다.
1939년경에는 장성(長成)지방에 가서 박삼용에게 흥부가 중 「박탄가」와 심청가 몇 대목을 7∼8개월간 배웠다. 1941년경 담양 읍내에 거주하던 명창 박동실(朴東實)의 동생 박영실(朴英實)에게 3년여 동안 「심청가」전 바탕을 사사받았다. 24세부터는 2년 동안 대동국극단(大東國劇團)에서 활동했다. 이 무렵 목소리가 변해 소리를 포기하고 악기에 힘을 쏟게 되었다.
1949년에 거문고 풍류로 이름난 김용근(金容根,1885-1965)을 정읍(井邑) 신태인(新泰仁)으로 찾아가서 1년 동안 거문고풍류 다스름에서 우조 굿거리까지 모두 학습했다. 1951년 다시 김용근에게 찾아가 가곡(歌曲) 초수대엽(初數大葉)에서 편락(編樂)까지 모두 배워 향제풍류(鄕制風流)를 갖추었다.
이후 1950년대는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공연예술이었던 여성국극 단체에 들어가 악사로 활동했다. 조금앵여성국악단과 삼성여성국극단에 있었다. 6·25전쟁 통에 부산에서 한갑득(韓甲得)에게 거문고 산조를 배우기 시작해서 10여년간 수시로 가락을 사사받았다. 1964년에는 약 1개월 동안 대전 천복사(天福寺)에서 거문고산조를 배웠다. 1964년 전주에 가서 1개월 동안 신쾌동(申快童)에게 거문고 산조를 배웠다. 거문고가락을 수련하기 위해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봉천암 등지에서 백일공부를 했다.
1975년 광주시립국악원(光州市立國樂院) 사범을 거쳐 1977년부터 광주 금호국악원(錦湖國樂院) 원장을 지냈다. 이후 거문고 독주회,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발표공연 등 각종 연주회에 출연하였다.
1993년 12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원광호의 거문고 가락은 한갑득류를 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만, 다양한 거문고 학습과정을 통해 이룩한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다. 유려한 한갑득의 바디를 기본으로 하되 호탕한 신쾌동의 성음을 구비했다는 평을 듣는다.
대금 · 거문고 · 태평소의 명인 원장현(元長賢)이 조카이다.
1966년 광주 기독교방송 주최 국악연주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 최우수상, 1967년 호남예술제 최우수상, 1988년 KBS 국악대상 연주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