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거문고산조」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9년경에는 장성(長成)지방에 가서 박삼용에게 흥부가 중 「박탄가」와 심청가 몇 대목을 7∼8개월간 배웠다. 1941년경 담양 읍내에 거주하던 명창 박동실(朴東實)의 동생 박영실(朴英實)에게 3년여 동안 「심청가」전 바탕을 사사받았다. 24세부터는 2년 동안 대동국극단(大東國劇團)에서 활동했다. 이 무렵 목소리가 변해 소리를 포기하고 악기에 힘을 쏟게 되었다.
1949년에 거문고 풍류로 이름난 김용근(金容根,1885-1965)을 정읍(井邑) 신태인(新泰仁)으로 찾아가서 1년 동안 거문고풍류 다스름에서 우조 굿거리까지 모두 학습했다. 1951년 다시 김용근에게 찾아가 가곡(歌曲) 초수대엽(初數大葉)에서 편락(編樂)까지 모두 배워 향제풍류(鄕制風流)를 갖추었다.
이후 1950년대는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공연예술이었던 여성국극 단체에 들어가 악사로 활동했다. 조금앵여성국악단과 삼성여성국극단에 있었다. 6·25전쟁 통에 부산에서 한갑득(韓甲得)에게 거문고 산조를 배우기 시작해서 10여년간 수시로 가락을 사사받았다. 1964년에는 약 1개월 동안 대전 천복사(天福寺)에서 거문고산조를 배웠다. 1964년 전주에 가서 1개월 동안 신쾌동(申快童)에게 거문고 산조를 배웠다. 거문고가락을 수련하기 위해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봉천암 등지에서 백일공부를 했다.
1975년 광주시립국악원(光州市立國樂院) 사범을 거쳐 1977년부터 광주 금호국악원(錦湖國樂院) 원장을 지냈다. 이후 거문고 독주회,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발표공연 등 각종 연주회에 출연하였다.
1993년 12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원광호의 거문고 가락은 한갑득류를 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지만, 다양한 거문고 학습과정을 통해 이룩한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다. 유려한 한갑득의 바디를 기본으로 하되 호탕한 신쾌동의 성음을 구비했다는 평을 듣는다.
대금 · 거문고 · 태평소의 명인 원장현(元長賢)이 조카이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7』(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편,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연구소, 1987)
- 『경향신문』(1994.3.11)
- 『뿌리깊은 나무 조선소리 선집 5 원광호거문고산조』(신나라뮤직 CD, 1995)
- 『거문고산조 원광호』(서울음반 CD)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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