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大會)’는 대규모의 모임을 뜻하며 음악·예술부문에서는 여러 명의 인원이 출연하는 큰 행사에 쓰였다. 행사내용이 공연방식이든 경연방식이든 구분하지 않고 모두 대회라고 했다.
1920∼40년대에 있었던 음악관련 대회 중 명창대회가 특히 많은데, 조선명창대회·전조선명창대회·남조선명창대회·팔도명창대회·전도(全道)명창대회·조선명창음악대회·명창음악대회·명창경연대회·남녀명창대회·조선남녀성악대회·전조선명창명기음악대회·초동(初冬)명창대회·신춘(新春)남녀명창대회·추계(秋季)명창대회·납량(納涼)명창대회·(삼남)수해구제명창대회·의연(義捐)명창대회·독자위안명창대회·궁술(弓術)명창대회·고아원동정명창대회·전조선예기(藝妓)명창대회·여류명창대회·일류명창대회·남도일류명기음률대회·권번합동명창대회·삼남기생연합명창대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때 사용한 명창대회라는 명칭은 특정한 공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여기에 공연상황을 뜻하는 대회명을 붙였기 때문에 공연의 특성이 변별되지 않고, 대부분 주최 측에서 기획한 일회성적인 행사여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남녀명창대회라는 명칭도 남녀명창대회·신춘남녀명창대회(또는 남녀명창대회, 인천남녀명창대회)·전조선남녀명창대회·독자위안남녀명창대회·전조선남녀궁술명창대회 등과 같이 폭넓게 사용되었고, 동일한 공연을 매체에 따라 서로 다른 명칭으로 기록하여 혼란스럽다.
남녀명창이 두루 출연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 판소리 공연이다. 1927년 6월 웅기(雄基)의 웅일청년회에서 주최한 남녀명창대회와 1928년 3월 보우친목회라는 단체가 주최한 신춘남녀명창대회, 1935년 1월 매일신보 독자위안남녀명창대회, 1935년 10월 필세정(必世亭)에서 주최하고 각 신문지국에서 후원한 전조선남녀궁술명창대회 1937년 8월 28일 부민관에서 매일신보 주최 황군위문(皇軍慰問) 남녀명창대회 등이 있다.
1947년 5월 영주(榮州)에서 열린 전국신인남녀명창선발대회를 전후하여 ‘남녀’라는 대회명을 사용하지 않아서 남녀명창대회는 더 열리지 않았다.
남녀명창대회는 당대에 유명한 남녀명창을 초청하여 공연하였는데, 1928년에는 이동백(李東伯)·이화중선(李花中仙)·김추월(金秋月)과 일류 명기(名妓)들이 출연하였고, 1935년 공연에는 이동백·이화중선·김창룡·신금홍 등 남녀가수가 출연했다고 한다. 공연내용은 알 수 없다. 이때의 공연들은 해당 지역단체나 청년회에서 주최하고 각 신문사에서 후원하여 열렸다. 단체는 경비를 마련하고 신문사는 홍보하거나 신문 독자를 위안한다는 목적으로 기획하여 이루어졌다.
명창대회를 통해 음악가들이 모여 공연함으로서 영향을 주어 기량이 향상되었고 무대에 적합한 레파토리도 발굴하는 효과가 있었다. 명창대회는 인기가 있어야만 무대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대목이 자주 공연되었고, 여러 사람이 무대에 서기위해 토막소리가 위주로 공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