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월 서울 낙원동에서 결성되어 대구에서 발회식 겸 창립기념연주회를 했다. 이외에는 활동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곧바로 해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각 지방에서 부르던 노래를 원래대로 연주하지 않고 마음대로 고쳐 불러 유행가처럼 소비시키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조선 음률 부활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1932년 1월 장문평(張文平)이 발의하고, 김창환(金昌煥)ㆍ정정렬(丁貞烈)ㆍ오태석(吳太石)ㆍ한성준(韓成俊)ㆍ양철(梁哲) 등이 발기하여 서울 낙원동 51번지에 사무실을 두었다. 연주회와 음률에 관한 기관지인『음률(音律)』(또는『사음률(四音律)』)을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남녀 연구생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창립기념연주회 외에는 뚜렷한 활동이 없다.
조선악정회의 발기인인 김창환ㆍ정정렬ㆍ오태석ㆍ한성준은 모두 1930년 9월부터 1933년까지 경성에서 활동했던 조선음률협회 회원이었고, 두 단체의 설립목적이 비슷한 점이 있다. 후발 단체인 조선악정회는 사업 규모나 내용 면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해산되었다. 그 구성원들은 조선음률협회와 뒤를 이어 조직된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