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가무대회 ()

국악
의례·행사
일제강점기에 음악과 무용을 한 무대에서 연출한 예술공연. 음악무용공연.
이칭
이칭
가무대회
정의
일제강점기에 음악과 무용을 한 무대에서 연출한 예술공연. 음악무용공연.
연원 및 변천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전통음악과 무용을 한 자리에서 공연할 때 가무대회라는 명칭이 종종 사용됐다. 1920년대 이후 조선가무대회, 조선고가무회, 강연가무대회, 정악가무대회, 연극가무대회, 동양가무대회, 경성명창가무대회 등 각종 가무대회가 열렸다. 조선가무대회라는 명칭으로 1927년 경성, 1933년과 1934년에 각각 마산과 진주에서 있었다.

1927년 2월 14일부터 일주일간 경성 우미관(優美館)에서 공연된 조선가무대회는 서양음악연주자들에 비해 천대받는 불합리한 현상 타개, 조선 재래 노래와 극(劇)의 부활, 조선음악과 무용의 참된 가치를 밝히고자 조선구가무흥행부(朝鮮舊歌舞興行部)에서 기획한 공연이다.

1933년 6월 26일 구미 산수좌에서 열린 공연은 마산고아원 경영기금 마련을 위해 송만갑이 출연하고 마산·창원권번 예기들이 후원한 공연이며, 1934년 2월 28과 3월 1일에 열린 공연은 진주에서 의기사당(義妓祠堂) 수리 기금 마련을 위해 진주권번이 후원하고 진양루(晋陽樓)에서 주최하였다. 당시 음악인들과 기생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선 공연에 출연하였는데, 수해구제, 고아구제, 기금마련, 군수물자지원 등과 같은 목적의 행사들이 많았다. 이날의 공연도 그 중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행사내용

1927년 조선가무대회는 이동백(李東伯)·송만갑(宋萬甲)·김창룡(金昌龍)·이화중선(李花中仙)·김해(金海) 김녹주(金綠珠)·신금홍(申錦紅)·이중선(李中仙)·김추월(金秋月) 등 조선의 일류명창·명기가 출연하였다.여러 종목을 묶어서 공연하거나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대회(大會)’의 경우 매체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공연도 조선고가무회(朝鮮古歌舞會) 또는 조선명창대회(朝鮮名唱大會)라고도 했다. 음악과 무용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공연이름에 무용을 넣어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무용이 크게 부각되지는 못하고 판소리로 이름을 알린 남녀명창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창대회의 성격을 띠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가무대회는 조선무용이 기방(妓房)문화의 하나로 인식되던 시기에 무용으로 사회 진출하는데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음악과 무용을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근대무용 탄생의 기반역할을 해주었다.

참고문헌

『조선일보』(1927.2.12: 1927.2.18:1933.6.25)
『동아일보』(1934.2.27)
집필자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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