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명창대회는 1930년 9월 각 지역의 명기(名妓)·명창을 선발하여 전국의 음악과 기예를 한자리에서 공연한 보기 드문 행사이다.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자 이듬해 1931년 9월 제2회 팔도명창대회를 열었다. 이후 1955년 10월 음악동인회 주최로 공연된 이후 더 열리지 않았다.
1930년 9월 22일∼23일 조선극장에서 열린 팔도명창대회는 전조선명창대회·조선팔도명창대회·조선각도명창대회라고도 한다. 경성의 조선권번·한성권번·한남권번과 대구 달성권번·광주권번·공주 예기상조회·평양 기성권번·원산 춘성권번·해주권번, 권번이 없는 강원도에서는 개인이 출연하는 등 팔도를 대표하는 기생들이 참석하였다. 또한 각도(各道) 무소속으로 참여시켜서 김창환·김창룡·이동백·정정렬·김추월·김초향·이화중선 등 이름난 명창들과 김기풍·김만송·김명수·이승환·임학준·방용현·심상건·지용구·최도성 등 이름난 풍류객들의 풍류도 준비되었다. 평양기생들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대회에 참석하여 관심을 끌었다. 전국의 각 지역 권번의 대표 기생들과 이름난 명창들의 공연이라 이틀간 경성방송국에서 중계방송 했다.
이후 1931년 9월 21일∼23일에 다시 조선극장에서 제2회 팔도명창대회가 열렸다. 경성의 조선권번·한성권번·한남권번은 각각 20여명이 넘는 인원을 대거 출연 시켰으며, 광주권번이 빠지고 군산의 소화권번이 참석하였다. 출연자가 바뀐 곳도 많았다. 명창 김우학·김창환·김초향·이동백·정정렬·노기(老妓) 이계월·고수 한성준 등이 출연하였다. 1회보다 더 과열된 양상이어서 극장은 공연시작 4시간 전부터 입장을 시작하였고, 관객은 자기 지방 출신들에 더 환호를 보내어 재창(再唱)·삼창(三唱)·사창(四唱)까지 하는 일이 있었다. 이 두 번의 팔도명창대회는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1955년 10월 13일 조선일보사와 평화신문사 후원, 음악동인회가 주최한 팔도명창대회가 열렸다. 출연자는 남도 임방울·임유앵, 서도 이진홍·김송죽 등 팔도명창이 출연하였다.
드물게 전국 규모의 대회를 2회 개최하였으며, 각 지방의 음악이 한 무대에 공연되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으로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