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이민을 온 한인들이 마나티(Manati)에 머물면서 마을을 이루었는데, 이 마을을 한인 마을, 곧 ‘라 코레아(La Corea)’라고 불렀다.
마을은 마나티 항구 주변의 해변과 철도역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가까이에는 한인들이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였던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 공장이 있었다.
1921년 3월 25일에 멕시코에 살던 한인들은 쿠바의 마나티 항구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들은 원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계획이었지만, 경기 불황으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가 어려워져 크게 실망하였다. 때 마침 마탄사스(Matanzas)에 자리한 에네켄 농장과 노동 계약을 맺고는 마탄사스로 다시 이동하였다. 하지만 일부 한인들은 마탄사스로 가지 않고 마나티에 남아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 공장에 취직하여 생계를 꾸렸다. 이들은 대부분 항구와 철도역 주변에 모여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는데, 이 공동체를 쿠바 사람들이 ‘한인 마을’, 곧 ‘라 코레아’라고 불렀다.
1921년 9월 21일에 마나티 한인 마을을 구성한 한인 30여 명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북미(北美)지방총회의 인준을 받아 마나티지방회를 설립하였다. 마나티지방회의 초대 회장은 양춘명이 맡았고, 1922년에는 김세원, 1923년에는 조태화, 1924년에는 구준식이 각각 회장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한인들은 노동 여건이 더욱 열악해지고 생계마저 꾸려 나가기 어렵게 되자, 점차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1926년 6월에 마나티지방회는 해산하였다. 그 뒤에 한인 마을에는 일부 한인들이 남아 설탕 공장에서 일하면서 명맥을 이었다. 이 공장에는 지금도 당시 한인들이 일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