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부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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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기 전주부의 자연지리적 입지 및 각종 문화 시설을 나타낸 4폭 병풍 형식의 회화식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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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세기 전반기 전주부의 자연지리적 입지 및 각종 문화 시설을 나타낸 4폭 병풍 형식의 회화식 지도.
개설

1977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지였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관향(貫鄕)이자 전라감영이 있던 호남의 대도회지였다. 당시 전주는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삼례읍, 봉동읍과 완주군 용진읍, 소양면, 상관면, 구이면, 이서면과 익산시 익산 시내, 오산면, 왕궁면, 그리고 김제군 금산면 일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중앙부를 북동으로부터 남서로 뻗어있는 노령산맥의 지류인 기린봉, 고덕산, 남고산, 모악산 그리고 완산 칠봉 등이 시가지의 동, 남, 서방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다. 전주 읍치는 전주천 충적토상에 건설되어 대체로 평탄하며 남동방 전주천 변에서 북서방으로 향하여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내용

19세기 전주의 읍치는 전주시 경원동, 중동, 풍남동 일대에 있었다. 전주의 진산은 읍치 북쪽의 건지산(乾止山)이다. 읍치에는 석성이 축조되어 있고 4대 성문의 문루도 갖추어져 있었지만 현재는 남쪽의 풍남문(豊南門)만 남아있다. 객사의 북쪽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조산(造山)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북문이 뚫려 있어서 객사의 안정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풍수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의 성 밖은 산천의 지형을 전통 산수화 양식으로 그렸으나, 화풍은 민화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성곽 내부에는 감사의 집무처인 선화당(宣化堂)을 비롯한 각종 관청이 위치해 있다. 내성 각 면의 이름을 첨지로 덧붙인 점이 특이하다. 성문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성내로 이르는 도로를 붉은 선으로 표시하였다.

읍성의 남동쪽에는 경기전(慶基殿)이 그려져 있는데,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곳이다. 읍치 바깥쪽 동남쪽에는 오목대(梧木臺)가 그려져 있는데, 1380년(우왕 6)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격퇴하고 돌아가던 중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으로 유명하다. 읍치 오른쪽의 위봉산성(威鳳山城)은 1675년(숙종 1)에 성을 쌓고 행궁(行宮)을 설치했던 곳이다. 읍치 동남쪽의 한벽당(寒碧堂)은 승암산 기슭인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으로서 전주팔경(全州八景)의 하나로 꼽힌다.

지도의 좌측 하단에는 전주부의 사방거리와 이웃 고을로부터의 거리를 표시하였고, 우측 하단에는 전주부 내성 4면의 원호(元戶) 3,783호와 내성 외 각 면의 원호 12,215호 등을 합하여 총 31개면에 원호 15,998호를 기록하였다. 1759년의 호구수를 보여 주는 『전주부읍지』에서는 총 원호가 20,193호로 기록되어 있고 1895년(고종 32)경에 작성된 『호남읍지』에서는 총 원호가 21,176호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지도는 18세기 중반 이전의 원호 수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1813년(순조 13)에 축조된 남고산성(南固山城) 진(鎭)을 이미 나타내고 있는 동시에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인봉서원(麟峯書院)을 아직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 대체로 19세기 전반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전반기 전주부의 각종 문화 시설을 비롯하여 읍치의 자연지리적 입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회화식 지도이다. 4폭 병풍 형식으로 제작한 전주부 지도로 희귀한 사례이다.

참고문헌

이종철, 「전주부지도에 담긴 전주 이야기」(『고지도에 나타난 전주 지명』, 전주문화원, 2023)
김기혁. 「『완산부지도10곡병풍』에 재현된 古都 전주」(『동양한문학연구』 41, 동양한문학회, 2015)
「고지도로 본 조선후기 전주부성과 전라감영」(이동희, 『전북사학』26, 전북사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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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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