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보광사 목조 보살 입상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 불상이다. 보광사는 고령산에 위치한 사찰로 파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 불상은 보광사 대웅전 주존불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2구의 목조보살이다. 불상 조각에는 영색을 비롯하여 5명의 승려 조각승들이 참여하였다. 이 두 보살상은 좌우 손의 위치만 대칭될 뿐 크기나 형태 등이 거의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이목구비는 작고 아담하며 천진무구한 모습이다. 이 목조보살 입상은 17세기 전반기 불교 조각 연구 및 유파 연구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파주 보광사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고령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 선조 32)에 설미와 덕인에 의해 법당과 승당이 건립되었고, 1633년(인조 11)에는 범종, 1667년( 현종 8)에는 대웅보전, 관음전, 만세루 등이 중창되었다. 1740년( 영조 16)에는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의 무덤인 소녕원(昭寧園)의 원찰이 되어 대웅보전과 광응전(光膺殿), 만세루를 중수하였으며, 이후로도 중수와 중창을 거듭하며 오늘날 파주의 대표적인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구의 보살 입상은 보광사 대웅전의 주존불로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것이다. 현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2구의 협시보살상은 양식이나 기법 면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10년( 광해군 2)에 인일(仁日)이 조성한 여주 신륵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과 양식적으로 매우 흡사하고, 협시상은 다른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좌협시 보살상의 복장에서 조성 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따르면 2구의 보살상은 경기도 양주 천보산 회암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미륵 보살상으로, 보살상의 조성에는 영색(英賾)을 비롯한 5명의 승려 조각승들이 참여하였다. 좌협시 보살상이 미륵 보살상인 것으로 볼 때, 우협시 보살상은 제화갈라보살상이며, 이 보살상들은 양주 회암사가 폐사되고 후에 파주 보광사 대웅전으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2구의 보살상은 좌우 손의 위치만 대칭되게 표현되었을 뿐, 크기나 형태 등에서 거의 같은 모습이다. 두 보살상은 양악의 살집이 풍부한 얼굴에 눈썹과 눈의 거리가 멀고, 콧날은 짧고 인중은 넓고 깊으며 입술은 길고 얇다. 전반적으로 이목구비는 작고 아담하며 천진무구한 모습이다. 이러한 천진무구한 얼굴은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0년, 현진 작)이나 구례 화엄사 비로자나삼신불상(1636년, 청헌 작),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9년 청헌 작) 등 17세기 전반기에 크게 활동한 현진(玄眞)이나 청헌(淸憲)이 제작한 불상과 상통한다.
머리에는 뒤쪽으로 둥글게 말린 보계(寶髻)를 정수리에 꽂았으며, 꽃 모양으로 능을 준 모판(母板)에 꽃무늬, 구름무늬, 봉황무늬, 불꽃무늬 등을 잘라 붙인 화려한 보관을 착용하였다. 보관의 아래로는 빗질하여 부착한 보발이 표현되었으며, 귀의 앞뒤에서 흘러내린 보발은 귀 밑에서 서로 꼬아 어깨 위에서 2개의 타원형 고리를 이룬 뒤 다시 세 갈래로 흘러내렸다. 이러한 보발의 표현 방식은 17세기 보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굵고 짧은 목에는 형식적으로 표현한 삼도가 표현되었다.
천의는 불의와 같이 이중으로 두텁게 걸쳐 입어 불신의 윤곽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손목을 덮어 내린 천의의 소맷 자락은 좌우로 새의 날개처럼 짧게 드리워 모양을 내었다. 넓게 노출된 가슴에는 수평의 군의 자락과 이를 돌려 묶은 띠 자락이 발목까지 드리워져 있다. 17세기로 접어들면 군의의 띠 자락은 대체로 표현하지 않고 생략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앞선 시기의 조각 경향도 함께 보여주어 흥미롭다. 천의와 군의에 표현된 주름은 간결하고 힘 있는 철선묘(鐵線描)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복부 아래로 펼쳐진 천의와 군의 자락에는 칼로 찍어 누르듯 직선과 호선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협시 보살상임을 감안하여 수인도 서로 대칭되게 표현되었다. 즉 좌협시 미륵보살상은 왼손을 위로, 오른손을 아래로 하였고, 우협시 제화갈라보살상은 이와 반대로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었다. 손바닥에는 ‘卄’모양의 손금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비례는 머리가 크고 어깨는 넓고 당당하여 작달막한 4등신의 신체비례를 보인다. 이는 높은 수미단과 예배자의 시선을 고려한 비율로 생각된다.
이 불상은 전반적으로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 상인 현진이나 청헌이 조성한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영색의 조각적 색깔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파주 보광사 대웅전 목조보살입상은 발원문을 통해 정확한 제작 연대, 제작자, 존상 명칭 등이 밝혀져 있어 17세기 전반기 불교 조각 연구 및 유파 연구에 기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