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상(元持常)은 원주원씨 시중공계 원익겸(元益謙)의 25세손이다. 자는 덕필(德必)이고, 호는 성암(成庵)이다. 의암(毅岩)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다. 3남 2녀 중의 장남으로 1885년에 충청북도 제천에서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하였다.
유인석은 조선 후기 성리학계의 분파 중에 화서학파(華西學派)에 속하며, 이항로(李恒老)의 척사사상(斥邪思想)을 전수받아 이를 을미독립운동으로 실천해간 인물이다. 이러한 위정척사사상은 유인석을 통하여 원지상에게도 전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의학적인 분야에 있어서 원지상이 어떠한 경로로 사상의학을 접하게 되었으며, 또한 동무 이제마(李濟馬)와 교류가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동의사상신편(東醫四象新編)』은 원지상이 45세가 되는 1929년에 출판되었는데, 장봉영(張鳳永)이 서문을 쓰고, 남대희(南大熙)가 발문을 썼다. 해방 후에는 여주군 내사리 소재의 본가 사랑채에서 서당을 열어 한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실질적으로 한약방을 운영하며 본격적인 사상체질 치료를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약 10년 정도였다.
서문을 쓴 장봉영과는 친척관계로 장봉영에게 원지상은 고모부이다. 그러나 연배가 비슷하여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장봉영의 아들인 장우성의 말에 의하면 원지상은 『동의사상신편』을 발행하기 전까지는 한의학에 대해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또한 『동의사상신편』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이와 유사한 서적이 존재하였는데, 이를 원본으로 하여 원지상이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추가한 후 재편집하여 『동의사상신편』이라는 책명을 붙여 발행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의학에 조예가 있으면서 친분이 있는 장봉영에게 서문을 부탁했을 거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동의사상신편』은 후대의 사상체질의학 관련 임상의서 편찬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