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익(金九翊)은 1880년 9월 9일 중국 길림성 용정(龍井)에서 출생하여 1969년 7월 22일 89세로 사망하였다. 호는 노산이다. 15세 때부터 의학자인 안형래(安亨來)의 문하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33세에 이미 『오운육기학(五運六氣學)』과 『임상의안집록(臨床醫案集錄)』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1914년(34세)에 만주로 들어와서 독학으로 사상의학 공부를 하였다. 1936년(56세)에 제자였던 박봉우(朴鳳宇)와 함께 함흥으로 가서 최겸용을 만나 의서인 『동의수세보원사상초본권』, 『동의사상초본권비망록』, 『격치고』, 『동무유고』, 『동의사상신편』 등을 가지고 중국으로 갔다. 특히 『동의수세보원사상초본권』을 율동계원이었던 최겸용에게서 필사하였다고 한다.
이후 중국에서 의원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동의수세보원 사상초본권』을 1951년(71세)에 다시 정자로 수초하여 세상에 전하였다. 손영석을 양아들로 삼아 가르쳤는데, 그의 마지막 제자가 된다. 1969년(89세) 문화혁명 때 손영석이 감옥에 가자 그 충격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김구익은 임상상 사상을 변상한 후 다시 각 상을 열다형(熱多型), 한다형(寒多型)으로 구분하였다. 임상상에서 항상 임기응변하면서 대담하게 약물과 방제를 운용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의학의 기본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많은 중병을 치료하였다.
그는 『동의사상임해지남(東醫四象臨海指南)』에서 새로운 사상변상법, 특히 사보론(四步論)과 사성론(四聲論)을 창안해 냈고, 중의약학과 고유의 사상약성에 따라 새로운 약성을 제정하였다. 또 자신의 평생 경험방인 태음인 62방·소음인 41방·소양인 35방을 공개함으로써 후세 사상의학의 임상과 연구발전에 공헌을 하였다.
김구익의 제자로는 세 사람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김구익이 함흥에 갈 때 함께 간 박봉우를 비롯하여 북한 원산에서 의사 활동을 했다고 하는 최종원, 함경북도 주을에서 의사 활동을 했다고 하는 김동석이 있다. 저서로는 『조선무산오운육기론(朝鮮茂山五運六氣論)』, 『연파당의안집록』, 『동의사상임해지남』 등이 있다.
김구익에 의해 세상에 전해진 『동의수세보원 사상초본권』은 처음에 이제마의 저작인지 분명하지 않았으나, 김구익의 제자인 손영석의 증언과 책 내용의 독창성 등에 근거하여 이제마의 저작으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