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부산에서 출생했고, 본명은 갑식(甲植)이며 날쌘 사람이란 뜻을 지닌 용자(勇子)를 예명으로 사용했다.
서울로 이사한 후 배화고등여학교에서 수학하다 성악가가 되기를 꿈꿔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음악학교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성악은 물론 무용에도 흥미를 느껴 두 가지를 함께 배웠다. 그는 도쿄음악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쳤던 에구치 류야[江口隆哉]와 다까다 세이코[高田貞子]에게 인정을 받아 2학년 때 일본청년회관에서 공연된 에구치 안무의 「마즐카」라는 무용 작품에 출연하였다.
1940년 4월 이시이 바쿠 무용연구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춤에 입문하여 약 4년 동안 현대무용을 배웠다. 그곳에서 만난 조택원으로부터 서울 공연 「부여회상곡」의 출연 권유를 받아 왕녀 역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후 「헝가리 광시곡」(1941), 「호두까기 인형」(1944) 등에 출연했고, 1944년 제1회 무용발표회를 당시 서울인 경성 부민관에서 올렸다. 1945년 열린 제2회 무용발표회에서는 한국무용 「영봉찬무」, 「즉흥무」, 「봉선화」 등을 추었고, 서양무용으로는 「헝가리 무곡」, 「나비」, 「바그다드의 여인」등을 올렸다.
자신의 안무작 「봉선화」는 일제의 압박에도 민족적 긍지를 내세운 춤으로 평가받았다. 1946년에 세 번째, 1949년에 네 번째 무용발표회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 6월 조택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무용예술협회’가 설립되면서 조용자는 현대무용부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5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무용연구소를 개설했고, 1960년에는 한국민속예술단 소속으로 프랑스 파리 국제민속예술대회에 참가했다. 그 뒤 일본으로 이주해 도쿄에서 조용자 무용연구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