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1921년 해삼위학생음악단이 고국 방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년(同年) 김동한은 해삼위동포연예단을 이끌고 고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춤을 선보였다.
그는 페테르부르크(彼得)대학 예술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연해주 정부 현악대 감독으로 재직하던 1922년 8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서양 무도를 가르친 최고의 예술학원이었던 조선예술학원의 원장으로 무도(舞蹈, 서양의 사교춤)와 사교춤을 가르쳤다.
1923년 제1회 음악무도회를 종로 중앙기독청년회관(현재 YMCA)에서 개최하였는데, 당시 관객들이 1천 명 넘게 몰려와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는 조선 최초의 공개 무도회였다.
1923년 조선예술학원의 수강생은 1백여 명에 이르렀고, 1925년에는 학원을 확장해 서대문(현재 충정로)에서 현재의 을지로로 옮기는 등 개관 이후 가장 번성한 시기를 보냈다. 이 학원은 약 3년 동안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동한은 1925년 갑자기 행방불명되었고, 그가 사라지면서 조선예술학원도 자연히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사교무용 학원을 열고 이를 널리 알린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