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몬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해삼위학생음악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무용가.
이칭
  • 이칭박세면(朴世冕), 박세타온, 시몬 박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러시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이찬주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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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해삼위학생음악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무용가.

생애 및 활동사항

러시아 해삼위(海參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세면(朴世冕)이고, 시몬 박, 박세타온이라고 불렸으며 러시아 원동대학(遠東大學)을 졸업했다.

그는 1921년 4월 해삼위학생음악단의 일원으로 고국을 찾았다. 해삼위학생음악단은 1921년 4월 24일 원산을 통해 고국 땅에 도착한 이후 약 30일 동안 원산을 시작으로 경성(서울), 평양, 황주 등지의 전국 순회 공연을 한 후 6월 8일 해삼위로 돌아갔다.

당시 박시몬은 러시아 원동대학(遠東大學) 학생으로 나이는 약 20~22세로 추정되며, 해삼위학생음악단의 공연에서 코사크춤(Cossack Dance)을 추었다. 이 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코사크족의 민속춤으로 군인들의 발걸음을 응용한 역동적인 춤이다. 박시몬의 코사크춤은 매 공연마다 마지막을 장식하며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그의 춤이 국내에서 무도 열풍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순회공연을 마치고도 고국에 남은 박시몬은 1923년 경성 안국동에서 개인 교습소를 열어 국내에 러시아 민속춤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그로부터 코사크춤을 배운 중학생 조택원이 무용가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연극 단체 토월회의 오케스트라에서 플루티스트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 『춤과 그들』(유인화, 동아시아, 2008)

  • - 『한국의 일상 문화와 몸』(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

  • -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김영희, 민속원, 2006)

  • - 『한국 무용 100년』(김경애·김채현·이종호, 현암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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