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산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한국국악협회 경북지부장을 역임한 무용가. 전통무용가.
이칭
  • 이칭유색(柳色)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8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904년(고종 41)
  • 출생지경상북도 대구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이찬주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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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한국국악협회 경북지부장을 역임한 무용가. 전통무용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0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유색(柳色), 호는 소산(小山)이다. 다섯 살 당시 대구기생조합 김수희 조합장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해 부산의 봉래권번, 수원의 화인청 등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17세에는 대정권번에서 지냈다. 권번별 조합별로 조선의 예기들을 소개한 책 『조선미인보감』(1918)에 18세 때 찍은 그의 사진이 남아 있다.

그는 대정권번에서 당대의 명인으로 손꼽힌 인물 하규일(1867~1937)을 만나 궁중춤을 배웠고, 대정권번이 조선권번으로 이름이 바뀐 뒤에는 선생으로 직접 기녀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23세 때에는 조선권번에 있던 대가 한성준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1920년 중반 고향 대구로 돌아온 정소산은 42세에 처음으로 발표회를 열었고, 46세에는 하서동에 ‘정소산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궁중춤 포구락, 무고, 검무 등의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1969년 포구락, 검무, 무고의 궁중춤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지정 심사에 오르면서 그의 존재가 대구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심사에서는 탈락했다. 궁중춤 이외에 잘 알려진 정소산류 춤은 ‘흥춤’(수건춤)과 ‘달구벌 검무’로 유명하며, 1978년 사망할 때까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상훈과 추모

경북 문화상(무용 부문, 1962), 문화공보부장관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 - 「대구 근대무용사의 선구자 정소산의 존재적가치론」(김죽엽, 『한국무용학회지』 제13권 2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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