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천 ()

무용
인물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전통무용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3년
사망 연도
2007년
출생지
전라남도
정의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전통무용가.
생애와 활동사항

1933년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박범준과 김소심의 2남 3녀 중 넷째(차남)로 태어났다. 세습무가 출신인 대금명인 박종기(朴鍾基)의 손자다. 18세 때부터 판소리 명인 박동준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30세 때에는 이매방에게 무용을 배웠다.

사람들에게 괄시받는 것이 싫어서 한동안 굿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하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다시 돌아와 진도 실업고등학교에서 국악 강사를 하면서 무가(巫歌)를 정리하고, 민요를 발굴하며, 장단을 채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앉아서 부르는 민요인 「모 심는 소리」·「아리랑타령」·「화초사거리」·「개구리타령」·「흥타령」·「둥덩이타령」, 일할 때 부르는 「뱃노래」·「술비소리」·「부뚜질노래」·「불무질노래」,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강강수월래」·「기와 밟기」와 어린애들이 놀면서 부르는 동요들을 배우고 채록했다. 1980년 11월 17일 진도씻김굿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85년 베를린음악제에 출전, 6개국 32개 지역을 순회하며 음악 선진국들을 놀라게 했고, LA올림픽 개막 축제 공연, 니카라과 세계민속음악제 등을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대외활동을 통해 진도씻김굿에 대한 민속문화적 가치 함양과 함께 무속음악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데도 크게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진도북춤을 재창조하여 박병천류 진도북춤을 완성했다. 또한 수많은 남도민속놀이를 재창조하여 문화재로 등극시켰다. 무가·민요·춤·장구·징·북·꽹과리·정쇠·벅구 등에 능한 만능 민속예술가라고 평가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남도들노래 팀으로 국무총리상을, 1974년 「강강수월래」로 대통령상을, 1975년 거문도 뱃노래로 국무총리상을, 1976년에는 진도 만가(珍島 輓歌)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1977년 진도다시래기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문화재관리국장의 감사장을 받았고, 1999년에는 문화훈장을 서훈했다. 이 외에 그의 이름을 딴 (사)박병천가무악보존회(이사장: 박성훈)는 수련회 등을 통해 그의 예술을 보존·진흥하며 후학들에게 우리의 혼과 맥을 전승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겨레음악인대사전』(송방송 저, 보고사, 2012)
『진도 세습무 박씨가계도 재구성 연구』(박미경·박주언, 민속원, 2007)
「박병천 명인의 생애와 예술적 배경」(이병옥, 『공연과 리뷰 Vol.23 No.1』, 현대미학사, 2017 )
집필자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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