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연대를 알 수 없으나, 초창기 국어문법 개설서를 집필한 국어학자이다. 1909년 경성 유일서관에서 학부검정을 받은 사립학교 국어과 초등교육학도용 문법교과서인 『초등국어어전』을 발행하였다. 이 책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1년 이 책을 개편하여 『조선어전』이라는 이름으로 펴낸 바 있다. 1927년 경성 영창서관에서 『울이글틀』을 발간하였다. 이후 활동은 알려져 있지 않다.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발간한 책들의 머리말을 살펴보면, 우리말 문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라 한다. 자세한 행적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울이글틀』의 자서(自序)를 살펴보면, 이 책은 개성의 호수돈여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며 집필한 것으로 되어 있어, 국어 문법을 연구하면서 교직 활동을 지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희상은 독특하게 ‘어전(語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어의 어음(語音) 및 어법(語法)의 정칙(正則)’을 가리키는 말로 삼고 있다. 그는 ‘문전’이라고 불리는 많은 책들이 실상 말소리와 그것이 조직되는 질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어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언어의 중심을 음성 언어로 보고 문장은 그것의 기록이라고 이해하는 근대적 언어관에 일정부분 부합한다.
또한 그는 초창기 국어학자들 중 일부와 비슷하게 영어 문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실제로 그가 국어 문법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영어를 공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통하는 점이 있다.
문법 연구사에 남긴 그의 업적은 영문법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국어의 특질을 반영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나름 힘썼다는 점이다. 특히, ‘사(詞)’라는 개념을 확립하여 오늘날 단어의 개념을 구축하였고, 지속적으로 7품사 개념을 확립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의 7품사는 주시경의 것과도 다른 독자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사와 어미를 형태론적 유사성과 기능의 유사성에 따라 토(吐)로 묶은 것은 여타 문법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것으로 곡용어미(조사)와 활용 어미(어미)를 구분하여 조사와 어미를 묶어 접사로 설정하는 현대 문법과 방법론적으로 유사함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