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용어미는 체언의 통사적 기능을 나타내기 위하여 체언에 결합하여 곡용에 관여하는 형태소이다. 격어미·격표지라고도 한다. ‘-이, -을, -에’ 등과 같이 격을 나타내는 형태소를 의미한다. 곡용의 범주를 최초로 설정한 사람들은 리델, 언더우드, 람스테르와 같은 서양 학자들이다. 대부분의 국어학자들은 형태소를 독립된 단어로 보아 조사로 처리한다. 국어의 조사는 격조사, 보조사, 특수조사 등으로 세분되는데 단어와 어미의 중간자적 성격을 보인다. 이 때문에 곡용어미를 인정하는 학자들도 격어미의 범주를 다르게 보기도 한다.
용언의 굴절을 활용이라 하고 체언의 굴절을 곡용이라 한다. 활용이 용언의 어간과 어미의 결합으로 다양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곡용 역시 체언이 어간이 되어 문법범주를 나타내는 어미와 결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곡용은 라틴어의 명사, 대명사, 형용사의 어간에 격(格), 수(數), 성(性) 등의 문법범주를 나타내는 어미들이 결합되는 현상을 가리키던 용어이다. 예를 들어 ‘box’와 같은 명사의 굴절에 있어서 ‘many boxes’의 ‘-es’는 수(數)의 문법범주를 나타내는 곡용어미이다.
그러나 국어에는 성과 수의 문법범주가 없으므로 국어에서의 곡용은 격에 대한 굴절뿐이며, 어미에 의한 굴절만 있으므로 국어의 굴절은 곧 어미변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어의 곡용은 체언 어간에 격을 나타내는 곡용어미(격어미)가 결합하는 현상이다.
‘-이, -을, -에, -으로’ 등과 같이 격을 나타내는 형태소들을 단어의 자격이 없는 어미로 보면, ‘바람이, 바람을, 바람에, 바람으로’ 등은 ‘바람’이라는 한 단어의 어미변화인 곡용이 되며, 이는 격어미 변화라 바꾸어 부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을, -에, -으로’ 등을 격어미로 보아 국어에 곡용의 범주를 최초로 설정한 사람들은 서양 학자들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인 리델(Ridel, F.)의 『한국어문법(Grammaire Coréenne)』(1881)에서는 체언 뒤에 쓰이는 격을 나타내는 형태소를 ‘주격, 구격, 속격, 여격, 대격, 호격, 처격, 탈격, 대립격’ 등을 나타내는 곡용어미로 보았다.
그 뒤 언더우드(Underwood, H. G.)의 『한영문법(An Introduction to the Korean Spoken Language)』(1890)에서는 곡용어미나 격어미 대신 후치사라 하여 서구어의 전치사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단어로 인식하다가, 람스테르(Ramstedt,G.J.)의 『한국어문법(A Korean Grammar)』(1939)에서는 다시 격어미 및 곡용의 개념이 도입되어 국어의 격을 ‘주격, 속격, 여격, 처격, 대격, 조격’의 여섯으로 구분하였다.
일찍이 람스테르 등의 알타이 문법가들의 영향을 받아 국어의 격 체계와 첨사, 그리고 후치사를 세운 이숭녕은 「조사 설정의 재검토」(1966)에서 격어미를 인도 · 유럽어의 명사 곡용어미와 같은 것으로 처리하고 ‘주격, 속격, 처격, 대격, 조격, 공격, 호격’의 7격을 설정하였다.
국어학자 중에서 초기에는 서양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명사 곡용론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격을 나타내는 형태소를 독립된 단어로 인정하여 지금은 이러한 문법 모형이 학교 문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곡용어미(격어미)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단어로 보아 조사로 처리하고 있다. 이들은 반드시 자립형태소가 단어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체언과 곡용어미의 결합이 용언의 어간과 어미의 결합만큼 밀착성이 강하지 않음을 근거로 삼는다.
예를 들어 ‘책 참 많구나!’와 ‘책 많이 읽어라.’ 등에서 때에 따라 ‘-이, -을’은 생략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체언과의 높은 분리성을 보여준다. 자립형태소는 아니더라도 ‘-이, -을, -에, -으로’ 등은 활용어미보다는 자립성이 크고, 이러한 점들을 토대로 곡용어미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국어의 조사는 격조사, 보조사, 특수조사 등으로 세분될 수 있는데, 국어에 곡용어미 또는 격어미를 인정하는 학자들에 있어서도 조사들 중 어디까지를 격어미로 보느냐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조사가 단어와 어미의 중간자적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격어미를 인정하더라도 조사 중 격조사만을 격어미로 다루고, 흔히 특수조사라고 하는 부류는 후치사 등으로 처리하고 있다. 격어미는 순전히 체언의 통사적 기능을 나타내주는 구실만 하는 부류인데, ‘-은, -는, -만, -도, 까지’ 등의 특수조사는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