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위에 납방염. 세로 104㎝, 가로 65㎝. 개인 소장. 우정(愚楨) 유강열의 「해풍」은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의 추천작가로서 「바다와 나비」와 함께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 하단에 바다 바람에 일렁이는 굵은 파도를 배치하였고 그 위에 분청사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도안의 물고기 한 쌍을 투박한 선으로 묘사하였다. 흰 바탕색과 먹선의 흑백 대비가 시원하고, 가느다란 크랙 라인(crack line : 균열선)과 굵은 먹선 그리고 물고기의 각진 선 등 선의 굵기와 변화가 미묘하다. 유강열의 납방염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난 1950년대 대표작이다.
유강열은 13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공예도안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인 1941년 일본공예가협회전에 염색 작품을 출품하여 가작으로 입선한 뒤, 도쿄에 있는 사이토[齋藤]공예연구소에서 도제식으로 일본의 전통 염색기법을 배웠다. 해방 이후 1952년 부산 국무원에 「호랑이」를 비롯한 납염(蠟染) 작품 2점을 출품하여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유강열은 국전 공예부에 염색 작품을 출품하여 이 시기 공예계를 이끌었다. 1954년 제3회 국전에서 「향문도(香紋圖)」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후 1955년 제4회부터는 국전 추천작가로 활동하며 제4회 「만추」, 제5회 「계절」, 제6회 때에는 「바다와 나비」, 「해풍」 등 2점을 출품하였다. 「해풍」은 바다에 바람이 휘몰아쳐 용솟음치는 성난 파도 위에 서로 마주 보는 한 쌍의 물고기를 표현한 유강열의 1950년대 대표작이다.
한 쌍의 물고기는 호랑이나 십장생, 나비 등과 마찬가지로 유강열이 즐겨 차용하였던 민화적 소재의 하나인데, 목판화와 염색 기법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병행하였다. 즉 전통적인 대상을 극도로 단순화시켜 굵고 거친 판화적 질감을 먹선에 반영하였다. 납방염을 할 때에도 다색 목판화를 제작하듯 바탕색은 그대로 두되 주제에 해당되는 부분에만 황색과 적색 계열의 네댓 가지 색채로 최소화하여 염색한 것이다. 바탕색을 밀납으로 면 막음한 후, 밝은 색부터 염색하면서 점차 납으로 막아가다가 마지막으로 외곽선에 먹색으로 칠한 후 전체 화면에 밀납을 바른다. 그리고 구김을 가해 납을 깨뜨린 다음 먹칠하면 화면 전체에 자잘한 크랙 라인이 강조되는 것이다. 유강열은 국전에 비슷한 경향의 염색 작품들을 출품하였다.
유강열은 1950년대부터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조선시대 민화에 등장하는 전통적 소재를 목판화 기법으로 단순화시키고 납방염 기법으로 제작하여 현대 섬유미술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 경향은 홍익대학교 공예과에서 양성한 후진들과 1960~70년대 국전 출품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