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국모는 1930년 2월 1일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동에서 태어났다. 1930년 4월부터 1936년 3월까지 평양 상수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1935년 서울에서 학생들의 학습전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6학년 도화와 작문으로 각각 2등상을 받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하고, 태평철공장, 신흥목공장, 병기소 철각공 등으로 근무하면서 철제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해방 후 1947년 5월부터 1956년 9월까지 구역미술제작소, 평양시미술제작소 및 국립중앙미술제작소 등지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주요 회의나 행사의 장식이나 초상화, 선전화, 표어 등을 그렸다. 1956년 9월 금속공예를 더 공부하기 위하여 1년간 중국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평양공예제작소에서 근무하였다.
서국모는 1947년부터 1956년까지 훈장과 메달을 제작하는 성과를 인정받아 1955년 김일성 표창장을 받았다. 금속 배지에 김일성 초상화를 새겨넣기 위해 금속공예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였고 순금으로 초상 휘장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였다. 북한 사람들이 가슴에 다는 「김일성 휘장」을 제작한 것이다.
1957년 중국에서 금속공예를 배워서 귀국한 이후에는 칠보공예작품을 주로 제작하였다. 1958년 「칠보접시」, 1958년 「화병」, 1961년 「금사접시」 등이었다. 「칠보접시」는 원만한 곡선형 접시로, 안쪽 벽면에 물결형 골곡과 크고 작은 무늬를 연속시키고, 중앙에 여섯 송이의 포도를 장식하였다. 색상은 녹색, 군청색, 흰색, 금색 안료를 사용하여 영롱하게 반짝이는 효과를 내어 칠보공예의 섬세함과 장식성을 보여주었다. 「금사접시」는 칠보 바탕 위에 금실로 수를 놓은 것처럼 처리하여 주목된다.
1960년대에는 생활과 관련한 공예품을 제작하였다. 1963년 「탁상장식」, 1965년 「신선로」, 1975년 「만년달력」 등을 제작하여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