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택윤은 1915년 11월 27일 자강도 위원군 덕암리에서 화전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위원공립보통학교를 입학하였고 3학년 때부터 벼루 등의 석공예 제작법을 배워 학비를 충당했다. 학교 졸업 후 위원공립보통학교에 부설되어 있는 제연과에서 8년간 근무하면서 석제품을 본격적으로 제작하였다. 1941년 일본의 석공장에서 힘겨운 노역생활을 하였고 해방 후 귀국하여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으로 석공예를 하였다. 1949년 5월 위원수성암공장에서 석공예품 견본을 만들었고, 6.25전쟁이 끝나고 1954년에 다시 수성암공장으로 돌아와 근무하다가 1955년에는 평양제작소에서 석공예품을 창작하였다.
류택윤의 석공예 창작은 1955년 평양제작소에 근무하면서부터이다. 1955년 「개구리잉크단지」를 비롯하여 1956년 「강냉이탁상등」, 1958년 「포도잉크단지」, 1960년 「강냉이필함」, 1965년 「갈과 게필통」, 1966년 「공작」 등의 석공예작품을 제작하여 국가미술전람회나 공예전람회에 출품하였다. 작품의 재료는 희귀한 보석이나 옥돌이 아니라 주위에 흔한 화강암이나 수성암 등이고, 작품의 형태 또한 개구리나 옥수수, 포도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겹고 친근한 소재들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생활에 필요한 벼루를 제작하던 경험을 살려, 탁상등이나 잉크단지 등 생활에 필요한 문방구를 제작하여 대중적인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