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위에 염색, 세로 60㎝, 가로 100㎝. 개인 소장. 학의 형태를 단순한 면으로 처리하되 선의 방향과 색의 농담으로 화면에 율동감과 짜임새를 주었다. 야트막한 산이 중첩되는 아스라한 배경 위로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여러 마리의 학의 움직임을 정감있게 표현하였다. 학으로 대표되는 부드러운 곡면과 산으로 대표되는 직선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는 학의 움직임을 따라 짙은 보라색과 남색에서 회색을 거쳐 화면 왼쪽 상단부터 아래로 따뜻한 주황색과 붉은색 노을이 퍼져가게 처리되어 있다. 안정적인 구도와 절제된 면 처리, 율동감을 주는 직선, 세련된 색감 등이 화면 전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백태호가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예부에 출품하여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사슴」과 1960년 제8회에 출품한 「수(壽)」는 모두 사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60년대 백태호는 사슴이나 학과 같은 전통 소재를 선택하여 형태를 단순화시켜 배치하되 일정한 직선으로 형상의 움직임을 형성하여 옵티컬 아트(Optical Art : 추상미술의 한 흐름으로 착시에 의한 시각적 효과를 이용한 작품)적인 느낌의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다. 1967년에 제작한 「정」 또한 당시 백태호의 작품 경향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다.
백태호는 띠선으로 면 막음을 한 후 스프레이로 염액을 분사하여 그러데이션(gradation) 효과를 주는 분사염 기법으로 선이 부드럽고 색이 고운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렇게 대상의 형태를 면으로 단순화시키고 이미지를 중첩시켜 면 구성을 하고 분사염으로 제작하는 방식은 그가 서울대학교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하면서 익힌 기법을 염색에 응용한 것이었다. 이것은 1960년대 홍익대학교 공예과에서 유강열과 그의 제자들이 납염 작품에 목판화 기법을 결합시켜 먹선이 강하고 강직한 형태로 작업하던 것과 비교된다. 백태호의 1960년대 양식은 이후 1990년까지 계속 이어져 비슷한 경향의 작품이 반복·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