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위에 납방염(蠟防染). 세로 163㎝, 가로 56㎝. 작가 소장. 이신자(李信子)의 「회고」는 1959년에 제작한 염색 작품이다. 나무와 돌, 달, 항아리 등 물상을 단순한 선과 면으로 해체하였다. 먼저 회색과 황색의 넓은 면으로 분할하고 밀납으로 면 막음 한 후, 적색과 청색으로 화면을 강조하고 거미줄처럼 가는 크랙 라인(crack line : 균열선)을 넣은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좋아했던 이신자는 1950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 재학 중인 195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함)에 포스터 칼라로 그린 벽걸이 장식을 출품하였다. 1955년 대학 졸업 후 제4회 국전에는 「벽걸이」라는 자수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천을 아플리케(appliqué : 바탕천 위에 다른 천으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 붙이고 그 둘레를 실로 꿰매는 수예)하고 염색한 작품에 자수를 놓은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이때부터 1965년 제1회 ‘이신자 작품전’까지 10년간 이신자는 아플리케 위에 스티치를 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는 꼼꼼하게 면을 메꾸던 전통 자수에서 벗어난 것이어서, 일부에서는 “이신자가 한국 자수를 망쳤다”는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기존의 자수 개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한국 섬유공예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신자는 1956년 제5회 국전에 「회고병풍」을 출품하여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여인상과 학, 석가탑, 토기, 청동기 등 전통적인 문양이나 유물의 형태를 단순하게 도안화하고 염색을 한 6폭 병풍이다. 이 작품은 「회고」와 마찬가지로 이신자 초기 염색을 대표한다.
이신자의 초기 염색 작품은 한국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물상을 크고 작은 섬세한 면으로 나누고, 오방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되 적색과 청색을 최소화하고, 밀납으로 염색을 조절한 후 가늘고 기다란 크랙 라인으로 마무리한다. 이러한 이신자의 초기 염색 작품은 1967년 제2회 ‘이신자 작품전’을 통해 완결되었다.
「회고」는 이신자의 초기 염색 작품으로서, 얇고 가는 동양화풍의 먹선과 거미줄처럼 가는 크랙 라인이 특징적이다. 이신자의 염색 작품에 보이는 태세가 있는 선은 동양화가인 남편 장운상의 영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유강열을 비롯한 1960년대 홍익대 출신의 납염 작품은 목판화처럼 먹선이 굵고 크랙 라인을 강하게 처리하던 것과 비교된다. 이신자는 1950~60년대에 자수와 염색의 현대화에 앞장섰고, 1970년대부터는 태피스트리(tapestry) 작업에 몰두하여 우리나라 섬유예술 분야를 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