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육군소장, 국방부차관, 육군중장 등을 역임한 군인. 관료·기업인.
내용
태평양전쟁 종전 후 귀국하여 1947년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 재무처장직을 수행하였고, 1948년에는 국방부 제3국장을 거쳐, 1950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는 육군 소장으로 승진하였다. 1951년 6월부터 1953년 11월까지는 장경근 차관의 후임으로 국방부 차관직을 수행하였다.
1954년 육군 중장 진급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수행원으로 한미회담에 참가하였으며, 대한석탄공사 군파견단장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55년 육군 중장으로 현역에서 전역한 후, 1955년 9월부터 1958년 8월까지 강성태 장관의 후임으로 상공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56년에는 경제조정관 서리를 겸임하기도 하였다. 1958년 8월 상공부 장관직을 그만두고 곧바로 민병기 장관 후임으로 1959년 3월까지 제17대 내무부 장관직을 수행하였고, 이어 최인규 장관과 자리를 교체하여 1959년 3월부터 1960년 4월까지 제8대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어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3·15 부정 선거의 여파로 발발한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모범수로 가석방되었다.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한국관광공사 총재, 군인복지연합봉사회 이사장, 유엔 한국참전국협회 회장, 재향군인회 회장, 한국전력 사장, 국토통일원 고문, 한국관광협회 회장, 경흥학원 이사장, 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기업인으로도 활동하여 이수산업 사장, 한동판유리판매 사장, 한진관광 사장, 정석기업 사장, 교통신문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그 밖에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여 한국복지재단 대표, 한국외국어능력평가원 이사장, 용산문화원 원장, 한국박물관 회장, 교회와 산업사회연구회 이사장직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972년 1월 재향군인회장 재직 중에는 그간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아, 대만 중국문화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1996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간의 공직활동으로 금성충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받았으며, 기업인으로도 1970년 동탑산업훈장 및 1982년 은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밖에 미국 대통령공로훈장, 스웨덴 적십자훈장, 필리핀 대통령훈장, 에티오피아 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2001년 10월 1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 1 (민족문제연구소, 2009)
- 『대한민국 인물연감』(청운출판사, 1967)
- 『매일경제』(1972.1.29)
- 『동아일보』(1962.8.14)
- 『동아일보』(195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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