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직 ()

목차
법제·행정
인물
해방 이후 경상북도지사,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 1월 12일
사망 연도
1964년 3월 16일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
관련 사건
가짜 이강석 사건|3·15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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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경상북도지사, 내무부 장관, 농림부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내용

1903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출생했다. 원명은 이계록(李季祿)이며 관상가의 말을 듣고 개명했다. 1928년 일본 도쿄 고료척식대학[東京紅陵拓植大學] 법과를 졸업했고, 1930년부터 강원도 원주군 군속(郡屬), 강원도 도속(道屬)을 거쳐 1938년 친일 전시 동원 선전 조직인 국민정신총동원 강원도연맹이 조직될 때 간사로 활동했다.

1942년 평창군수에 임명되었으며, 해방 직후 원성군수로 근무하다가, 1945년 12월 강원도 비서과장 겸 광공과장, 1946년 강원도 광공부장, 강원도 상공국장 겸 토목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사임했다. 이후 대동건설(大東建設) 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강원도 상공회의소 회두(會頭)로 활동했다. 약 2년간 실업에 종사하다가 1949년 7월 다시 강원도 산업국장에 기용되었다. 같은 해 12월 강원도 내무국장이 되었고, 1950년 서울시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審計院) 심계(審計) 제2국장, 1952년 함태영 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 경상북도지사에 임명되었으며, 재직 중 영남일대에서 일어난 ‘가짜 이강석’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1957년 9월 국무위원으로 입각해 내무부 장관으로 취임했다가 1958년 5·2민의원 총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해 6월 물러났다. 사임 후 자유당 당무위원인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1959년 3월 재차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1960년 3·15선거대책 6인위원회 중의 한 명으로 참여했다.

4·19혁명 이후 1960년 5월 2일 공직에서 사임한 후 부정선거 모의조작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1964년 3월 16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친일인명사전』 2 (민족문제연구소, 2009)
『대한민국건국10년지』(건국기념사업회, 1955)
『대한민국행정간부전모』(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전 농림 이근직씨」(『동아일보』, 1964.3.16)
「3·15부정선거에 상소심 판결」(『동아일보』, 1961.12.7)
「부정선거원흉 자유당국무위원사건 판결」(국가기록원 민주화운동아카이브즈, 1961.12.6)
「이근직 전 농림장관 소환」(『경향신문』, 1960.5.21)
「내무장관 이근직씨」(『경향신문』, 1957.10.7)
국가기록원(www.archives.go.kr)
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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