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출생했다. 원명은 이계록(李季祿)이며 관상가의 말을 듣고 개명했다. 1928년 일본 도쿄 고료척식대학[東京紅陵拓植大學] 법과를 졸업했고, 1930년부터 강원도 원주군 군속(郡屬), 강원도 도속(道屬)을 거쳐 1938년 친일 전시 동원 선전 조직인 국민정신총동원 강원도연맹이 조직될 때 간사로 활동했다.
1942년 평창군수에 임명되었으며, 해방 직후 원성군수로 근무하다가, 1945년 12월 강원도 비서과장 겸 광공과장, 1946년 강원도 광공부장, 강원도 상공국장 겸 토목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사임했다. 이후 대동건설(大東建設) 주식회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강원도 상공회의소 회두(會頭)로 활동했다. 약 2년간 실업에 종사하다가 1949년 7월 다시 강원도 산업국장에 기용되었다. 같은 해 12월 강원도 내무국장이 되었고, 1950년 서울시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審計院) 심계(審計) 제2국장, 1952년 함태영 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 경상북도지사에 임명되었으며, 재직 중 영남일대에서 일어난 ‘가짜 이강석’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1957년 9월 국무위원으로 입각해 내무부 장관으로 취임했다가 1958년 5·2민의원 총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해 6월 물러났다. 사임 후 자유당 당무위원인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1959년 3월 재차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1960년 3·15선거대책 6인위원회 중의 한 명으로 참여했다.
4·19혁명 이후 1960년 5월 2일 공직에서 사임한 후 부정선거 모의조작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1964년 3월 16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