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했다. 1930년 일본 교토[京都]제삼고등학교 졸업, 1933년 교토제국대학 경제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8월 조선총독부 재무국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으며, 1934년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1936년 평안남도 강서군수로 부임했으며, 1939년 12월 황민화운동의 전개를 목적으로 조직된 내선일체실천사의 평안남도지사 고문을 지냈다. 강서군수로 재직 당시 중일전쟁 관련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제조 공출, 국방헌금과 애국기 헌납자금·군사후원자금 모금 등 전시업무를 수행했다.
1944년 11월부터 함경북도 재무부 재무부장·농상부 농상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평안남도 이사관, 함경북도 사무관, 조선금융조합 연합회 함북지부 감리관 등 조선총독부 관리 등을 역임했다.
해방 후 미군정에서 재무부장과 기획처장의 서리를 지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한국전쟁기 내무부 차관직을 수행했다. 사직 후 1952년 한국비료주식회사 사장, 1953년 대한수산중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후 학계로 나아가 성균관대 교수를 거쳐 1959년 성균관대 부총장이 되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3·15부정선거에 연루되어 재판 받은 최병환의 선처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 되었으며, 1963년 12월 체신부 장관에 임명되어 1964년 7월까지 재임했다.
1966년 장관 시절 서울은행과 관계된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4월 20일 협심증(挾心症)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