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

  • 정치·법제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내무부차관, 체신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교육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66년 4월 20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6년 8월 23일
  • 출생지경기도 안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4년
  • 김희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내무부차관, 체신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교육자.

내용

190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했다. 1930년 일본 교토[京都]제삼고등학교 졸업, 1933년 교토제국대학 경제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8월 조선총독부 재무국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으며, 1934년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1936년 평안남도 강서군수로 부임했으며, 1939년 12월 황민화운동의 전개를 목적으로 조직된 내선일체실천사의 평안남도지사 고문을 지냈다. 강서군수로 재직 당시 중일전쟁 관련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제조 공출, 국방헌금과 애국기 헌납자금·군사후원자금 모금 등 전시업무를 수행했다.

1944년 11월부터 함경북도 재무부 재무부장·농상부 농상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평안남도 이사관, 함경북도 사무관, 조선금융조합 연합회 함북지부 감리관 등 조선총독부 관리 등을 역임했다.

해방 후 미군정에서 재무부장과 기획처장의 서리를 지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한국전쟁기 내무부 차관직을 수행했다. 사직 후 1952년 한국비료주식회사 사장, 1953년 대한수산중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후 학계로 나아가 성균관대 교수를 거쳐 1959년 성균관대 부총장이 되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3·15부정선거에 연루되어 재판 받은 최병환의 선처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 되었으며, 1963년 12월 체신부 장관에 임명되어 1964년 7월까지 재임했다.

1966년 장관 시절 서울은행과 관계된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중 4월 20일 협심증(挾心症)으로 사망했다.

참고문헌

  • - 『친일인명사전』 3 (민족문제연구소, 2009)

  • - 「친일인명사전 주요인물과 행적」(『한겨레』, 2005.8.29)

  • - 「전 체신부장관 홍헌표씨 별세」(『한국일보』, 1966.4.21)

  • - 「홍헌표 체신장관 사임 모종사건에 관련 인책」(『경향신문』, 1964.7.21)

  • - 「각료에 듣는다 체신부 장관 홍헌표씨 새살림을 어떻게」(『경향신문』, 1963.12.20)

  •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