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8세기 전후에 목조로 조성된 보살좌상으로, 방형 얼굴에 대의를 입고 보관을 쓴 보살상이다. 원래 삼존의 협시보살로 조성되었는지 원래부터 독존으로 조성되었는지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이 보살상의 복장에서는 조선시대 책과 다라니, 그리고 후령통이 발견되었다.
보관은 훼손되어 일부 장식만 남아 있다. 중간이 갈라진 보계는 귀 뒤를 한번 돌아서 양어깨에 세 가닥으로 늘어뜨렸다. 보관을 쓸 수 있도록 턱을 만들어서 머리를 올렸다. 얼굴은 방형으로 가로로 긴 이마에 솟은 코와 인중을 두툼하고 또렷하게 표현하였고 입은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불상은 보살상이지만 대의를 입고 있으며 보관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영락 장식이 표현되지 않았다. 수인은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내려 아미타하품인을 짓고 있다. 가슴 부분에 속옷의 상단은 직선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배 앞에서 크게 U자형을 그린 옷자락의 표현은 도식적이다. 앉아 있는 다리와 발목에 모아지는 옷주름이 표현되었으며 왼쪽 무릎 위에서 나뭇잎 모양의 옷자락은 넓게 퍼져 있다. 법의의 주름과 군의의 부채꼴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특징을 보인다.
이 보살상 제작에는 조각승 충옥(沖玉) · 각초(覺初)와 탱화(幀畵) 제작자인 양공(良工) 3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옥과 각초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활동한 조각승이다. 이 조각승들은 1684년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불조전 불상과 1690년 전라남도 곡성 도림사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상, 그리고 1703년 수화승 색난과 함께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 각황전 불상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색난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으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영남 지역까지 활동하였다.
복장물을 통해 조각승 충옥과 각초가 이 보살상 조성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의 활동 연대를 통해 이 보살상이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복장물에서 발견된 불교 경전과 다라니, 그리고 후령통은 조선 후기 불복장의 전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