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43.5㎝.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의 문신 송광연(宋光淵)의 『범허정집(泛虛亭集)』「오대산기(五臺山記)」를 보면, 고운암은 북대인 상두암(象頭庵, 현재 미륵암)과 상왕봉 사이에 위치했던 암자였지만 폐사(廢寺)된 상태이다. 어느 시기인가 삼척의 신흥사에서 봉안해 오다가 보존을 위해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
목조석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710년에 북대(北臺) 고운암(孤雲庵)에 봉안하기 위해 조각승 광습(廣習) 등 3인이 제작하였다.
고운암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머리를 약간 숙여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둥근 형태의 머리에 굵직한 나발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은 사각형으로 눈썹에서부터 돌출한 코가 특징이다.
목이 짧아 어깨는 움츠린 듯하며 밋밋한 가슴, 폭이 좁은 무릎은 이 시대 불상 양식과 상통한다. 가슴 위로 규칙적인 주름이 접혀 있는 승각기 상단이 표현되어 있다. 양손은 모두 무릎 위에 올려 놓았는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이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이지만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친 대의 자락이 표현되었으며 팔은 그대로 노출시켰다. 옷은 매우 두껍게 조각되어 마치 두꺼운 갑옷을 걸친 것처럼 보이며, 배 앞에는 벌어진 W형의 주름이 대칭적으로 표현되었다.
고운암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짧고 웅크린 듯한 신체, 평판적인 가슴, 신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두터운 불의와 독특한 착의법, 그리고 옷주름의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전반기 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보존 상태도 지극히 양호하며 아울러 정확한 제작 시기 및 작가를 알 수 있는 복장유물을 동반하고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의 기준작으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