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양 필 산수도 ( )

회화
작품
문화재
1811년 이의양이 제작한 조선시대의 산수도.
정의
1811년 이의양이 제작한 조선시대의 산수도.
개설

2007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종이 바탕에 수묵. 세로 131.3㎝, 가로 54.5㎝. 이 작품은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戶]가 아닌 쓰시마[對馬島]까지 왕래한 1811년 조선 통신사행 때 수행 화원이었던 부사용(副司勇) 이의양(李義養)이 당시 에도 후기 수묵화의 대가로 불린 다니 분초[谷文晁, 1763~1840]의 그림을 본떠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내용

그림의 우측 하단에 “조선 신원이신(朝鮮 信園爾信)”이라는 이의양의 호와 자를 기록하여 그의 작품임을 밝혔다. 그림 우측 상단의 화제(畵題) 및 관련 화평(畵平)은 통신사행의 차상통사(次上通事)로 참여한 진동익(秦東益, 1782~?)이 짓고 쓴 것으로 다음과 같다. “곡문조의 그림을 본뜨다. 해외에 묵연 전하니 이신원[그림]은 풍미가 있고 청신하다. 산을 그려낸 청안(靑眼) 지금은 어떠한지. 그림 속 인물은 응당 내 꿈속 인물이겠지[仿谷文晁畵, 海外墨緣轉法輪, 信園風味亦淸新, 寫山靑眼今何似, 畵裏人應夢裏人, 朝鮮 淸翁評].”이라는 화평이 있다. 따라서 그림의 제목은 진동익이 쓴 것을 근거로 “방곡문조산수도(倣谷文晁山水圖)”라고 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다니 분초의 부친은 타야수가[田安家]의 가신이자 한시 문인이었던 다니 로코쿠(谷麓谷, 1729~1809)이다. 다니 분쵸는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 1758~1829]에게 인정받아 『집고십종(集古十種)』 편찬 때 삽도를 담당하는 등 에도시대 문인화단의 중진이었다. 그의 그림은 가노파의 가토 분레이[加藤文麗, 1706~1782], 나가사키파의 와타나베 겐타이, 스즈키 후요[鈴木芙蓉, 1752~1816]에게 배운 고화(古畵)의 모사와 사생을 기초로 남종화, 북종화, 서양화 등을 혼용한 독자적 화풍을 창출하였다.

이 그림의 모본(模本)이 된 다니 분초의 작품은 「방동북원필의산수도(倣董北苑筆意山水圖)」로, 중국 오대 남당(南唐)의 화가 동원(董源, 943~962년경)의 산수화풍에 기원을 두고 청(淸) 초기 정통산수화파의 화풍을 반영한 전형적인 남종산수화풍을 보여준다. 동원은 왕유와 함께 중국 남종화의 종조로 평가되는 인물로, 그의 산수화는 중국 남방의 강이나 호수 주변의 산수와 잎이 무성한 수목을 소재로 하여 피마준과 반두준(礬頭皴)을 사용한 전형적인 산 묘사가 특징이다.

이의양의 작품의 하단에는 수목이 우거진 계곡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위에 지팡이를 든 인물과 그의 종인이 따르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전형적인 동원 화풍의 습윤한 활엽수림, 계곡 주변 언덕의 피마준법과 주된 배경을 이루는 주산의 정상에는 흙덩어리 모양의 반두준법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이의양의 「부사동래산도(富士蓬萊山圖)」 역시 이의양이 다니 분초의 그림을 본떠 그린 작품으로, 배경의 습윤한 후지산은 다니 분초의 화풍을 본뜨고, 전경에는 후지산과 자주 비교되던 조선의 금강산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이의양의 작품에 미친 일본 에도 화풍의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며, 1811년 통신사행에서 또 다른 서화 교류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통신사행 때 쓰시마에서 통신사 접대 문인들과 교류의 결과로 제작된 것으로, 이의양의 작품에 미친 일본 에도 화풍의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조선 화원이 에도 화가의 작품을 방하여 그린 작품으로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이전 시기 통신사의 문화 교류에서 서화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전수되던 관행과 비교할 때, 19세기 초 통신사행에서는 일본 화가의 작품이 조선 화원을 통해 수용되는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1811년 쓰시마 통신사행의 서화 교류」(정은주, 『동아시아 문화연구』60,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5)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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